ISO26000(사회적 책임에 관한 국제 가이드라인)은 2010년 11월 발효된 이래 이미 80여개 국가에서 자국의 표준으로 채택되었고, 국가별로 직면한 사회, 경제, 환경, 문화 및 정치 여건에 맞추어 활용되고 있다. ISO260000에 담겨있는 내용이 워낙 다양하고 함축적이라 다른 일반 국제표준들과 비교할 때 내용의 분량에서도 3~4배에 달한다. 그래서 그런지 발행 당시에 기대했던 것보다 확산 속도는 다소 느린 듯하다.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발생하는 인권문제, 불공정 거래, 부패 관련 스캔들 등으로 인해 사회가 들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ISO26000의 사회적 책임 지침 내용에 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 다른 국가에서도 우리처럼 별 관심이 없는 걸까? 유럽의 경우는 좀 달랐다. 유럽연합(EU) 관련 조약을 수호하고 EU의 행정기능을 맡은 EU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ISO26000을 서둘러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전략 수립 지침으로 받아들였다.
유럽이 왜 ISO26000의 사회적 책임 지침에 집착하는지 그 배경과 흐름을 알아보기 위해 2012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표준화기구(ISO)가 개최한 ISO26000 국제워크숍 공개포럼 당시로 거슬러 올라 가보자. 그 당시 'ISO26000의 미래 비전 이슈와 조치' 주제에 대한 패널토론이 있었고, 격렬한 토론에 이어 곧장 수행한 이슈 선호도 조사 결과에서 우선순위 1위는 '사회적 책임의 평가, 검증 또는 인증을 위한 ISO 문서 개발', 2위는 'ISO 26000의 사용을 단순화하기 위한 도구 개발', 그리고 3위는 'ISO 26000의 편익에 대하여 좀 더 어필할 수 있는 표현 개발' 이었다. 이러한 맥락 하에 스웨덴 표준연구원이 중심이 되어 ISO/IWA(international workshop agreement)26 개발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자는 2017년 5월 2~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2차 ISO/IWA26 개발 워크숍에도 참석하여 최근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2차 ISO/IWA 26 워크숍의 목적과 의의
2차 워크숍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작업한 ISO/IWA26 첫 워크숍 결과물인 ISO/IWA26 초안을 검토하면서 발췌·제출한 코멘트를 중심으로 워크숍에 참석한 전문가들 사이에 합의를 도출하려는 목적에서 열렸다. 직접 워크숍에 참석한 각국 전문가 26명에 웹엑스(WebEx)에 의한 원격회의 참석자 7명을 합치면 모두 33명이 논의에 참여했다. 과거 ISO26000의 개발 과정에 300~400명이 참여한 것과 비교하면 10분의1정도 수준이지만 컨센서스 도출에 있어서는 상당히 효율적이었다.
이번 워크숍에서는 어떻게 ISO 경영시스템표준의 상위수준구조(high level structure)와 ISO26000 중 필요한 부분만 논리적으로 매끄럽게 연결하느냐 하는 것이 논의의 핵심이었다. ISO 경영시스템표준은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인증 표준이지만, ISO 26000의 기본 방향이 인증을 의도하지 않는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이러한 맥락은 그대로 ISO/IWA 26에도 연계되고 있어 사용자나 독자가 좀 헷갈릴 수 있다.
ISO 경영시스템표준의 상위수준구조를 분해하면, 4절 조직의 맥락 이후, 5절 리더십, 6절 계획수립, 7절 지원, 8절 운영, 9절 성과평가, 10절의 개선으로 이어진다. 이 상위수준구조에서 핵심은 미국의 통계학자이면서 통계적 품질관리(statistical quality control)의 대가인 에드워드 데밍 박사의 PDCA(plan-do-check-act) 사이클을 활용한 것이다.
2차 ISO/IWA26 워크숍의 특이사항과 기회요소
ISO/IWA26 출발 자체가 ISO26000 지침을 조직에서 사용하는 기존의 ISO 경영시스템표준과 쉽게 연결해서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기존의 본문 구성을 깨고, ISO/IWA26의 부속서에 들어가야 하는 그림과 표를 과감하게 본문의 설명 내용 부분에 함께 포함하도록 시도하였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ISO 중앙사무국의 최종 검토과정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ISO/IWA 개발 프로세스의 특성상 1년 안에 표준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워크숍 진행을 다소 서두르는 느낌이 있었고, 본문 문구 수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최종 손질은 논의 현장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역시 영국의 몫으로 남았다. 2차 ISO/IWA26 워크숍에서 마무리한 ISO/IWA26은 한시적인 표준으로서 ISO에서 공표된 시점으로부터 최대 6년 동안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이후는 ISO 회원국의 제안에 따라 철회되거나 더 개발 될 수 있다.
ISO/IWA26이 발행되면 ISO 26000은 없어지나?
ISO/IWA26이 발행되어도 ISO26000은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분명하게 설명하고, 기업과 조직이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지침으로서 그대로 존재한다.
ISO/IWA26을 사용하는 조직에게 줄 수 있는 편익은 사회적 책임 지침을 결합함으로써 경영시스템의 성과를 개선할 수 있고, 구조화된 경영시스템 접근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의 성과도 개선될 수 있다. 조직은 기존의 경영시스템표준에 ISO26000의 사회적 책임 지침을 통합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통합 운영 가능한 기존의 경영시스템표준으로는 ISO9001(품질경영시스템), ISO14001(환경경영시스템), ISO27001(정보보안경영시스템), ISO/DIS45001(산업보건 및 안전경영시스템) 등이 있다.
우리는 ISO/IWA26을 어떻게 활용 할 것인가?
우선 ISO 26000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증이 아니라 권고사항에 불과하니 수수방관해도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시장 니즈의 원리에 따라 ISO/IWA26이 발행된다고 보아야 한다. ISO26000 영문판을 국가표준으로 번역한 ‘KSA ISO 26000:2012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지침’에서 제시하는 7원칙, 7핵심주제, 관련 37이슈 및 권고사항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적어도 조직의 환경 및 사회적 리스크 관리 관점에서 ISO/IWA26이 기술하는 경영시스템표준을 연결하는 작업을 시도해야 한다.
ISO/IWA26은 21쪽 분량의 한시적인 표준으로써 구조적으로 경영시스템표준의 조건을 갖추면서 요구사항(requirements)만은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지금은 권고사항으로 적용하지만, 언젠가는 시장 니즈의 원리에 따라 인증 목적의 표준으로 돌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특히, 국내 산업계의 경우 윤리경영, 준법경영, 사회공헌, 기부활동,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등으로 현재 상태에 머물러 있다가는 머지않아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책임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의한 비관세 장벽으로 인해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큰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정부와 관련 기관에서도 산업계가 ISO26000과 ISO/IWA26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유도할 필요가 있으며, 현실적으로 기술적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관련 기술지도 또는 자문지원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김종열 리딩경영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