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은 살인적인 철야 작업과 상습적인 임금체불,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렸다. 이때 여성 노동자 김경숙은 YH무역 노동조합 상무집행위원이었다. 부당 전출과 감봉을 일삼던 YH무역은 그해 위장폐업 공고를 냈고, 노동조합은 사측의 불법행위에 저항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신민당사를 점거해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을 강제해산하던 경찰의 폭력에 김경숙은 8월 11일 유명을 달리했다.
유신정권 몰락의 도화선이었던 YH사건이다.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18년에도 여성 노동자의 여전히 힘겨운 싸움을 이어간다. 88CC 골프장 경기보조원부터 KTX 승무원까지, 모성권, 근로조건, 직장 내 성희롱과 성차별 등 인권 침해에 대한 직장여성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성별임금격차: 오후 3시부터 무급으로 일하는 여성
직장여성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성별임금격차(남성과 여성의 임금 차이)’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성별임금격차가 36%로 15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남성이 100을 벌 때 여성은 64를 벌고, 이를 노동시간으로 환산하면 여성은 오후 3시부터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다.
여성 노동계는 작년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처음으로 성별임금격차에 대한 공동행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3시 STOP’ 선언문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잘못되었다고 인식하는 사회, 그리고 ‘떼먹힌’ ‘36’만큼의 임금을 쟁취하겠다고 고한다. 여성계는 올해에도 이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직장 내 성희롱 또한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직장에서 일어나는 성희롱과 강제추행의 본질에는 권력 관계가 있다. 성희롱과 강제추행이 개개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적인 문제라는 인식과 다르게, 이는 가해자가 상황과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에게 거절할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러한 성희롱은 ‘직장’이라는 공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인 만큼 사적 문제가 아닌, 직장여성의 노동권과 인격을 침해하는 사회적 문제이다.
직장 내 성희롱은 피해자에게 수치심과 정신적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활동을 제한하고 2차 가해가 높은 빈도로 발생하기에 더 심각하다. 2017년 11월 14일 국가인권위는 ‘직장 내 권력형 성희롱 집중 조사 실시’ 보도자료에서 인권위에 접수된 성희롱 사건들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고용주, 상급자 등이 부하 직원을 성희롱하고도 오히려 피해자를 회유, 협박, 보복하는 경우가 빈번했다”며 조직 구성원들이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 삼으며 책임을 전가하거나 사건을 은폐·왜곡하는 등 추가적 가해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직장 여성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본인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보호받을 수 있는지다.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단에서 피해자의 주장이 과거보다는 존중받고 있다. 하지만 성희롱이 발생하였을 때 체계적으로 해결할 절차와 방법,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관용 없는 강력한 처벌의 부재 때문에 피해 여성들은 아직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주저한다. 2016년에 가구 기업 ‘한샘’에서 일어난 사내 성범죄 사건 같은 게 대표적이다. 피해자는 작년 12월 끝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재가서비스 영역에서 성희롱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2017년부터 통합재가서비스가 확대되어 요양보호사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남과 동시에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성희롱 역시 증가했다. 특히, 재가서비스 영역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이어서 이직에 대한 부담감이 크기에 성희롱이 발생하더라도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신보라 의원에게 경찰청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범죄는 2012년 341건, 2014년 449건, 2016년 545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2017년에는 8월까지 370건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성희롱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직 문화 지침을 명시하고, 성희롱은 피해자의 인생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준다는 사회적 인식이 명확해지고, 가해자에 대한 관용 없는 처벌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아직도 당연하지 않은 모성권
모성권이란 출산 전·후 휴가에 대한 보장, 임신·출산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를 의미한다. 육아휴직 거부와 육아휴직 후 복귀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이익이 모성권 침해의 대표적인 예시다.
신생아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정부가 각종 ‘저출산 대책’을 쏟아낸 덕분인지, 출산 전·후 휴가가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당연한 권리’라는 인식이 그나마 퍼지고 있다. 그러나 육아휴직을 거부당하거나, 육아휴직 사용 후 복귀 시 발생하는 불이익은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에는 근로자가 만 8세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휴직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고 되어있지만,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근로자가 신청한 육아휴직을 사업주가 허용해야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회사에 다니는 동안은 사규가 우선이다”며 출산 전·후 휴가나 육아휴직을 법으로 규정된 기간보다 적게 허용하거나, 신청한 휴가 승인을 관리부에서 지연시키는 등 꼼수를 쓰고 있다. 다른 예로 육아휴직을 신청하자 “복직 후 자리를 보장할 수 없다”라거나 “연차수당과 실업급여를 받게 해줄 테니 사직하라”는 압력을 넣기도 했다. 한 간호사는 사업주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자 “이 바닥에서는 둘째를 출산한 사례가 없다”라며 퇴사를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직장 일선의 관행이 확산하는 사회적 인식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에는 사건이 발생해야만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고용노동부의 수동적 태도와 고질적인 근로감독관 부족이 문제로 꼽히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사업주 허락 없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명문화하는 것과 지켜지지 않을 시 강력한 처벌 조항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혼퇴직제 역시 암암리에 직장여성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2016년 대구광역시 주류제조업체인 금복주는 결혼한 여직원에게 퇴직을 종용하며 압박했다는 혐의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를 받았다. 국가인권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업체에서 “채용, 배치, 임금, 승진, 직원 복리 등 인사운영 전반에 걸쳐 성차별적 고용 관행이 수십 년 동안 누적되었다”고 밝혔다. 해당 업체에는 1957년 창사 이래 결혼하는 여성 직원을 “예외 없이 퇴사시키는” 관행이 유지되었다. 국가인권위 차별시정 위원회 결정에서는 “여성을 부수적인 직무 및 낮은 직급에 배치하거나 간접고용 위주로 채용”한 것과 “여성을 주임 이상 승진에서 배제하는 승진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 계획을 수립할 것을 권고했다.
황현숙 서울여성노동자회 부회장은 “한국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 국가 최하위 수준인 만큼, 전반적으로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며 “여성 재취업보다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을 통해 경력 단절 자체를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공고한 유리천장
직장여성에 대한 대표적인 성차별 사례로는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이후 같은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승진·임금에서 차별을 받거나, 심지어 복직이 거부되는 경우도 있다. 아예 출산휴가 사용 중 해고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육아휴직에서 복귀 시점부터 여성 노동자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성차별 행위로는 육아휴직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인사고과 최하위를 주거나 호봉승급 제외와 대기발령, 승진에서 제외, 배치에서 불이익, 육아휴직 후 임금인상을 거부하는 사례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서른이 넘으면 여성만 승진에서 제외한다거나, 장기간 근무 여성을 한직으로 보내는 것이다. 육아휴직이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되어야 하고, 정부의 근로감독이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성차별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도 이어진다. 업무와 관련해 사업주, 고객, 동료에 의한 폭행과 폭언 및 여성 노동자들에게 직장 내 권력 관계와 성별 권력에서 비롯되는 모욕적 언행이나 무시가 발생한다. 이러한 성차별적인 젠더 괴롭힘과 노동권 침해 행위는 불평등하고 권위적인 조직문화가 용납되기에 발생한다.
이처럼 직장여성이 인권이 침해되었을 때,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도움 자체를 요청할 곳을 찾지 못할 때가 많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운영하는 무료상담기관 ‘평등의 전화’는 성차별, 성희롱, 모성권 침해 등 직장여성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2016년 평등의 전화 상담사례집’에는 평등의 전화와 상담을 통해 직장여성들이 권리를 되찾은 사례가 분석되어 있다. 한 여성 간호사는 육아휴직을 사용한 지 6개월째 접어 들어가던 중 다태아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입원을 권유할 정도였다. 육아휴직 복귀 2개월을 앞둔 시점에서 사업장에 육아휴직 연장 의사를 밝혔지만, 사업주는 강경하게 육아휴직 연장을 거부했다.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협하던 육아휴직 거부는 상담실이 고용노동부 주무관에게 내담자 상황을 알리고, 고용노동부에서 사업장을 지도 점검한 결과 겨우 사업주의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상담사례집’에 수록된 다른 여성 웹디자이너는 사장과 부장으로 구성된 회사인 줄 알고 입사했으나,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장이 퇴사하면서 사장과 단둘이 일하게 되었다. 이후 사장은 여러 차례 성희롱했고, 집에 데려다준다면서 피해자를 차에 태워 수차례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 피해자는 더 이상 가해자를 마주할 수 없어서 사직서를 이메일로 제출한 뒤 상담실을 찾았고, 상담실에서는 본인의 감정과 스스로 겪은 사실을 분리해서 기록할 것을 권했다.
이후 경위서와 증거를 정리해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고, 동시에 형사고소를 진행했다. 고용노동부는 사업주에게 과태료 500만원을 통보했으며, 이는 직접적 증거가 없었음에도 피해자가 평소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고 친구들에게 성희롱이 발생한 당시 메신저로 이를 상세히 알린 내용이 정황증거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성 평등 노동을 통한 제도의 실효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결국 지방자치단체 단위의 움직임이 요구된다. 황현숙 부회장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노동정책 자체를 수립하려는 시도가 미흡하다. 지자체 단위별로 성별임금격차를 직종별로 조사하는 등 실태를 파악해 그 원인을 찾고, 원인에 상응하는 구체적인 조례와 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 부회장은 그 정책을 뒷받침할 행정체계와 지원하는 기관이 함께 추진되어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작년 5월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이 여성 비정규직 임금차별 타파의 날 선포식을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상엽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