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시중은행의 수출채권 리스크 관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2014년 모뉴엘 사건으로 된서리를 맞았음에도 수출채권 매입업무와 관련해 중복 매입사례가 나오는 등 여전히 매입 심사와 사후 관리에 소홀한 모습이다.
7일 금융감독원이 공시한 ‘제재내용 공개안’에 따르면 국민·신한·KEB하나·농협·기업은행은 최근 사후송금방식(O/A·Open Account) 수출채권 운용과 관련해 금융당국으로부터 경영유의와 개선사항 처분을 받았다.
시중은행의 수출채권 관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왼쪽부터) 국민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농협은행, 기업은행 본사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경영유의 및 개선사항은 금융회사의 주의 또는 자율적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 지도적 성격의 조치다. 금감원은 이들 은행에서 O/A방식 수출채권 매입업무와 관련해 중복 매입 사례가 나오는 등 리스크 관리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O/A방식은 상거래를 할 때 일정한 기간의 거래를 모아서 그 대차를 청산하는 형태로, 수출기업 입장에서는 조기에 현금을 확보할 수 있고 D/A(인수도조건)등과는 달리 환어음을 발행하지 않고 선적서류 송부도 은행을 경유할 필요가 없다.
이에 은행에서는 수출입상의 수출계약이나 매입서류, 재무 상태, 신용도 등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등에서는 수출채권대금이 만기일에 수입자로부터 정상 입금되지 않고 수출자가 자기자금으로 일부 또는 전부를 결제하는 등의 사례가 발생했다. 또한 다른 은행이 이미 매입한 수출채권을 중복 매입하는 등 이상 징후에 대한 확인도 소홀히 한 것으로 나왔다.
이는 지난 2014년 발생한 '모뉴엘 사태'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앞서 전자 업체인 모뉴엘은 해외 수입 업체와 공모해 허위 수출자료를 만든 뒤 6개 은행에 수출채권을 매각했다. 이로 인해 법원에서는 수출채권 매입과정에서 은행이 채권 매입 주의 의무를 위반했는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바 있다. 은행에서는 수출 채권 매입시 서류 심사 등을 확인할 의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은행권의 채권 심사는 소홀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협은행의 경우 O/A방식 수출채권을 매입하면서 수출계약과 매입서류의 주요내용의 일치 여부를 면밀히 확인하지 않고 채권 매입을 지속한 사실이 확인됐다.
아울러 단기수출보험(EFF) 취급시 차주사의 수출거래가 단기수출보험(EFF)으로 부보되는 무역거래인지 여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함에도 O/A방식 수출채권 매입한도를 부여함으로써 해당 여신의 상환위험을 확대한 사례도 나왔다.
금감원 관계자는 “O/A방식 수출채권 매입업무와 관련해 이상 징후를 발견한 경우 그 사유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등 관련 업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단기수출보험(EFF) 등을 담보로 수출금융을 취급함에 있어서도 부보대상 거래 해당여부, 면책사유 발생 가능성 등에 대한 심사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업은행에서는 O/A방식 수출채권 매입심사 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지적됐다.
특히 O/A방식 수출채권 매입한도를 심사 승인하면서 담보로 취득한 차주사의 단기수출보험(선적 후-일반수출거래 등) 증권의 경우 담보가치가 희박함을 여신 심사에 고려하지 않은 사례가 나왔다.
이에 단기수출보험(선적 후)의 담보력을 매우 높게 인정해 O/A방식 수출채권 매입한도를 승인함으로써 차주의 신용공여한도보다 과다하게 운영됐다고 금감원은 진단했다.
단기수출보험(선적후)이란 수출자가 수출자의 대금미회수위험을 담보하기 위해 무역보험공사와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수출자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대금미회수의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여신 담보력은 은행의 수출채권매입대금 미회수위험에 대해 직접 무역보험공사가 연대 보증하는 수출신용보증(NEGO)나 미회수손실을 보상하는 단기수출보험(EFF)에 비해 낮다.
금감원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차주 회사에 대한 여신의 리스크부담이 크게 확대됐다”며 “전반적인 리스크관리 현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철저한 관리방안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어 “O/A방식 수출채권을 매입하면서 수출계약 및 매입서류의 주요내용이 일치하는지 여부에 대해 면밀히 확인하지 않고 채권 매입을 지속한 사실도 발견됐다”며 “앞으로 O/A방식 수출채권 매입업무에 있어 관련내규 등에 부합하게 심사를 보다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