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은 제 128주년 세계 노동절이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등 많은 노동조건의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OECD 회원국 중에서 두 번째로 오래 일하는 나라다. 뿐만 아니라 성별, 고용 형태에 따라서도 차별이 존재한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 개선과 인식 변화와 함께 한국 노동운동의 개혁도 요구되고 있다.
과도한 노동시간…제도 개선 필요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노동운동은 비교적 그 역사가 짧다. 일제강점기였던 1923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8시간 노동제를 요구했다. 이후 조선노동동맹과 조선노동총동맹 등의 단체가 주도한 한국 노동운동은 1945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결성되면서 8시간 노동, 최저임금제 확립 등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신탁통치를 둘러싸고 전평이 반발하자 미군정은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을 결성했고, 정부는 대한노총을 유일한 합법노조로 인정했다.
대한노총이 어용단체화하면서 1923년 이래 5월 1일이었던 노동절은 1957년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 10일로 변경됐다.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 1963년부터 노동절은 근로자의 날로 불리게 됐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성장한 민주노조운동 진영에서 1989년부터 3월 10일 근로자의 날 대신에 5월 1일을 노동절을 기념하기 시작하였고, 그러한 노동자들의 요구가 일부 반영되어 1994년에 법개정을 통해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지정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923년의 파업을 기점으로 한국 노동운동은 노동시간 단축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특히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근로기준법 준수는 사회적 의제로 부상했다. 그 결과 1980년대 후반을 즈음해 노동시간은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1988년 2910시간이었던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점차 줄어 2013년에는 2247시간을 기록했다. 25년 만에 742시간이 단축된 것이다. 1989년의 노동법 개정과 2005년 주5일 근무제 시행으로 노동시간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14년부터 2200시간대에 머물면서 답보 상태를 보였던 연간 노동시간은 지난해 2069시간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지난 25년간 지속적인 노동시간 단축 노력에도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길게 일하는 나라 중 하나다. 2016년 기준 한국은 멕시코(2255시간)에 이어 2096시간을 기록해 OECD 국가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1인당 평균 연간 노동시간을 기록했다. 이는 OECD 평균인 1764시간보다 305시간 많은 수치로 법정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계산했을 때 한 해에 1.7개월을 더 일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탈법적 노동 상황을 감안했을 때 멕시코보다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이 더 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노동계는 ‘2020년 1800시간 노동’을 충족하려면 노동시간 단축을 저해하는 요인들을 개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중 하나가 실질 노동시간 단축이다. 노동자가 합의를 하는 경우 주당 근로시간을 12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게 하는 법정 연장근로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 50조와 53조를 보면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은 금지되며, 노동자가 합의하더라도 주 52시간을 넘길 수 없다. 하지만 2015년 기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 주 52시간 이상을 일하는 장시간 노동자는 전체의 17.9%인 345만 명으로 집계됐다. 과로사 기준인 주 60시간 이상 일하는 숫자는 113만 명(5.9%)이다. 법정 근로시간보다 길게 일하는 이가 전체 노동자의 20%를 넘는 데에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 노동부 해석 지침 등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노동시간 실태와 단축방안’ 보고서에서 근로기준법과 시행령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근로기준법 제 11조의 법정 근로시간 적용 범위와 시행령 제 7조로 4인 이하 사업장에서는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주 40시간 근무제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자는 지난해 기준 6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밖에도 제 59조와 63조로 여러 산업과 업무가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점도 발견된다.
남성, 여성 대비 평균 노동시간 3시간 가량 많아…여성 업무 배제 원인으로 지적
2016년 통계청에서 조사한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보면 평균 노동시간은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남성의 평균 노동시간은 20대 후반에서 주 40시간대로 진입해 30대 후반 47.1시간으로 정점을 찍은 뒤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50대 후반을 기점으로 44.5시간으로 감소해 완만한 감소곡선을 보인다. 핵심연령층인 25~54세의 주당 노동시간은 45시간이다. 주목할 점으로는 1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주52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근무자 비율이 20% 이상이다. 이에 반해 여성은 20대 후반의 평균 주당 노동시간이 41.8시간으로 가장 높다. 이후 출산과 육아 등의 요인으로 30대에 들어서 큰 폭으로 감소했다가 60대 진입 전까지 40시간대 초반의 수준을 유지하는 M자 구조를 나타낸다. 이밖에 모든 연령층에서 주 36시간 미만의 단시간 근무자가 주52시간 초과 장시간 근무자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연령층에서 남성의 평균 노동시간이 여성의 노동시간보다 많다. 핵심연령층에서 노동시간의 차이가 가장 큰 시기는 30대 후반으로 약 9시간(남성 47.2시간, 여성 38.1시간)의 차이를 보인다. 여기에는 출산과 육아를 여성의 역할로만 규정하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충호 한국사회책임협동조합 이사장은 “정부가 출산 및 육아지원을 위한 제도와 관련해서 여성 근로자에게 대한 직접 지원을 확대하고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지원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자리와 임금 안정성에서도 남성과 여성은 차이를 보인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통계청 지역별고용조사 분석을 보면 여성 근속연수는 4년인 데 반해 남성 근속연수는 6년인 것으로 조사됐다. 남성 근속연수는 차츰 늘었지만 여성 근속연수는 5년째 늘지 않은 결과다. 전문가들은 고용과 노동 차원에서 여성이 배제되지 않을 수 있도록 제도의 개선과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안치용 한국CSR연구소장은 “과거에 비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성별 임금격차, 남녀 고용 차별 등이 여전하다”며 “‘독박’육아 등 성차별적 현실에 대한 인식 변화가 제도 개선과 함께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 조건 개선 위해 이기주의적 노동조합 개선이 관건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고용 형태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 2015년 정규직의 주당 노동시간 평균은 45.5시간이다.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자 비율은 17.6%, 주 36시간 미만의 단시간 노동자 비율은 2.8%다. 반면 비정규직의 평균 노동시간은 39.8시간으로 집계됐다. 장시간 노동자비율은 17.6%로 정규직과 같은 수치를 보였지만 주 36시간 미만의 단시간 노동자 비율은 28.9%로 정규직에 비해 크게 높았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7년 6월 기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의 월 평균 노동시간은 4.2시간 감소했고 시간당 임금총액 수준도 정규직 대비 69.3%로 올라 2016년(66.3%)에 비해 3%p 개선됐다.
성별과 고용형태에 따라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정부,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중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그럼에도 국민이 인식하는 노조의 모습은 다르다.
지난해 5월 한국노총이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벌인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현재 노동운동 점수를 41.4점으로 매겼다. 구체적으로는 국민경제발전, 정치적 민주화, 경제권력 견제, 사회약자 권익 보호, 노동자 경영참여 노력 등 노동조합이 중점을 두고 있는 구체적인 역할 가운데 50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항목은 '노동자 권익 증진(54.6점)'뿐이었다. 여기에는 ‘노조의 이기적 행태’, ‘노동운동에서 보이는 전투성’과 ‘노동조합이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의견 등이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적 행동이 심하다'는 데 전체 응답자의 70.8%가 동의했다.
노동계에서도 노조의 집단이기주의를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 노조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노조 내부의 맹목적 이기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내부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반면 노조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가 분리될 수 없는 점, 따라서 노동조합의 활동이 정치와 분간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오히려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영역이 계속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노동조합이 보이는 이기주의와 정치적 연관성과 별개로 낮은 노조 조직률과 투쟁 방식이 문제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고용노동부의 발표를 보면 임금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10.1%로 전년대비 0.3%p 상승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12.8%, 1.9%로 전년대비 0.4%p, 0.2%p씩 상승한 결과다. 하지만, 30%를 웃도는 OECD 평균 노조 조직률에 비해 한국의 상황은 최하위권이다. 작년 기준 주요 선진국 중 한국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한 나라는 프랑스(7.7%)가 유일하다. 그러나 프랑스는 단체협약을 산별노조 단위로 교섭하는 구조여서 낮은 노조 조직률을 보완할 수 있다. 기업별로 교섭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봐야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밖에 한국 양대 노조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분열,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변화해야 하는 노동조합의 역할과 기능 등 노조들 둘러싼 변화와 개혁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OECD 회원국 중에서 두 번째로 오래 일하는 나라다. 사진은 작년 5월1일 광화문에서 열린 세계 노동절 대회 모습. 사진/뉴시스
동지훈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