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19년만의 총파업을 앞두고 있는 국민은행 노사간의 갈등이 승자 없는 치킨 게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노사간 협상의 최대 쟁점은 성과급이다. 노조에선 지난해 최대 실적 달성에 따른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며,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사측은 파업이 발생할 경우 임원진 전원 사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친 상태다. 양측 모두 출혈적 공방을 펼치면서 결국 금융소비자만 피해를 보는 '승자없는 게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민은행이 총파업에 나선 것은 19년 만의 일이다. 지난 2000년 주택은행과의 합병에 반대하며 파업에 나섰을 때도 1만명 넘는 직원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은행의 전체 직원은 1만7000명, 조합원 기준으로는 1만4000명이다. 전국에 지점은 1057개로, 고객 수는 3000만명에 달한다.
국민은행이 점포수와 고객이 가장 많은 은행들 중 한 곳이어서 총파업에 들어가면 고객 불편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반드시 영업점을 방문해야 하는 개인대출과 외환, 기업금융 부분이다. 개인대출 중 일부 집단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 부동산 구입 대출 등은 이날 이용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외화를 현찰로 받아야 하는 외환 업무 역시 문제가 될 전망이다.
기업대출 중에서도 대출 만기일 연장이나 수출어음 매입, 외화수입 매입 등은 반드시 정해진 날에 영업점에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고객에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은행 콜센터 연결도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영업점 혼란으로 인해 전화 문의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1억 연봉을 받는 은행원들이 고객 불편을 무시하고 파업을 강행하는 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여론도 적지 않다.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받고 있으면서, 수익을 낸 만큼 성과급을 더 달라는 건 무리한 요구란 지적이다.
국민은행 직원의 평균 임금은 시중은행 가운데서도 두 번째로 높다. 각 은행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하나은행의 직원 평균 임금이 9200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각각 9100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우리은행은 8700만원으로 나타났다.
노조가 이달 8일을 기점으로 총 5차례의 파업 스케줄을 잡은 것도 고객을 볼모로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오는 30일부터 2월 1일까지 이어지는 2차 총파업은 설 연휴와 이어져 있어 파업이 강행될 경우 고객 불편이 클 전망이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의 주요 고객인 자영업자 폐업이 늘고 있는데, 고객이 낸 이자로 번 이익을 두고 싸우는 것에 대해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은 기술변화에 대응해 직무관리 시스템과 일하는 방식을 재정립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국민은행의 모회사인 KB금융지주도 '노조 리스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내외 영업환경 악화와 경쟁 심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노조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내년 경영목표 달성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은행 경영진 54명은 노조의 총파업에 따른 영업차질시 퇴진하겠다는 뜻으로 지난 4일 사표를 제출했다. KB금융 관계자는 "사내이사를 맡고 있는 은행 이사진이 퇴진 의사를 밝힌 상태라 상반기 경영진 워크숍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며 "이달 중순 이후에나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와의 임단협 타결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경영 효율화 수단 중 하나인 희망퇴직도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 경쟁사인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농협은행 등은 이미 희망퇴직 신청에 들어가거나 완료한 상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은행권이 올해 디지털 대전환을 속도내고 있어 지점 통폐합과 인력구조 개편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국민은행의 총파업을 앞두고 컨틴전시플랜(비상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총파업에 들어갈 경우 IT와 총괄 대응 부문 등으로 나눠 상황대응반을 꾸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비상대책에는 은행이 파업 당일 본점 직원을 지점에 파견하는 등 인력 운영을 비롯해 고객에 대한 파업 안내 등 대고객 서비스 운영방안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권 전체가 참여하는 파업이 아니라 국민은행 단독으로 진행하는 파업인 만큼 지금 단계에서는 당국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면서도 "비상대책 메뉴얼에 따라 소비자 불편이 심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고 있는지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 8일 파업 가능성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