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지난해 장애인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일반국민 대비 74%(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정보화진흥원). 정부는 “사회 취약계층의 정보격차 문제가 해마다 개선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여전히 공공장소에서는 장애인들을 위한 안내가 제대로 돼 있지 않고 장애를 보조하기 위한 기구의 가격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움은 더 하다. 문자보다는 이미지나 영상으로, 음성보다는 전자기기로 소통하는 시대가 오면서 시각장애인들은 음식 주문 하나도 힘들어졌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시각장애인들의 소외감은 더욱 커지는 실정이다.
시각장애인들과 세상의 연결고리가 되고 싶은 곳이 있다. 지난 2015년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용 점자 스마트워치를 개발한 ‘닷(Dot)’이다. 간단한 메시지와 시간을 알려주는 점자 스마트 워치를 시작으로 텍스트부터 이미지까지 구현하는 미니와 패드, 공공장소에서의 안내를 도와주는 퍼블릭까지 나아가는 게 기업의 로드맵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정보를 통해 세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촉진제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성기광 닷 공동대표를 지난 14일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사무실에서 만났다.
성기광 닷 대표. 사진/닷
‘점(닷)과 점을 연결해 세상을 더욱 접근 가능하게 하자. 전 세계의 시각장애인과 시청각장애인이 교육과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저렴하며 접근 가능한 혁신들의 선구자가 되고자 한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사무실 오른쪽 벽에 붙어있는 회사의 사명과 비전이었다.
그 비전과 사명이 시작점이었다. 성 대표와 현재 군 복무 중인 김주윤 대표는 미국 유학시절 만나 창업을 결심했다. 성 대표는 “당시 다니던 현지 교회에 시각장애인 친구들이 많았는데 친구들이 쓰는 기기들의 가격이 얼마나 높고 성경을 읽는데도 얼마큼의 불편을 겪는지를 알게 됐고 한국에 들어와서 닷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시각장애인들의 취업률은 20~30%대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마저도 안마사, 음악가 등 불안정한 직업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취업률이 낮은 이유는 점자로 교육을 받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학교에서 사용되는 점자책은 제작도 어렵거니와 가격도 비싸다. 6년간 맹아학교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책값만 수백만 원이 들 정도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문서를 디지털화해서 점자로 나타내주는 기존 기기(braille displays)들이 있었다. 하지만 크기와 무게도 웬만한 백과사전 2~3개 정도거니와 가격도 500만원에 달했다. 개인이 구매하기는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결국 정부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지만 수혜 인원은 제한적이었다. 전 세계 시각장애인 인구 3억명 중 점자기기 보급률은 5%에 그친다.
닷은 시각장애인의 취업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점자기기 보편화에 나섰다. 당시 점자기기에 탑재되는 모듈은 하나의 크기가 손바닥만 한데다 하나에 30달러 정도였다. 기기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닷은 작은 공간 안에서 점자를 표시할 수 있도록 핵심기술을 고안해 초소형 모듈을 개발했다. 덕분에 기존 제품보다 20분의 1 크기와 10분의 1 가격으로 스마트워치를 만들 수 있었다. 닷의 점자 스마트워치 가격은 35만원이다.
3년여 간의 시제품 개발을 거친 끝에 지난해 6월부터 온라인 시장과 한국, 미국, 중동, 유럽, 러시아 등의 오프라인 시장에 내놨고 반응은 뜨거웠다. 성 대표는 “원래 점자기기들이 개인들이 부담할 수 없는 가격대여서 B2G(정부와의 거래) 시장이 발달돼있었지만 우리는 친구나 가족이 생일에 선물을 해줄 수 있는 수준으로 가격을 내렸다”면서 “시각장애인 아들이 처음으로 시간을 읽었다며 어머니가 감격스러워하는 리뷰들이 유튜브에 다수 올라왔고 그로 인해 힘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스마트워치 개발과 출시까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성 대표와 김 대표는 미국에서 이미 창업을 두 번 정도 시도한 경험이 있었다. 그럼에도 창업을 향한 열정과 점자기기에 대한 사명은 꺾이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창업을 추천한다. 인생에서 10년을 배우는 것을 2년 안에 배울 수 있다. 망해도 다시 창업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성 대표와 김 대표는 과감하게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에서 다시 시작했다. 성 대표는 “처음 1년 정도 개발해서 진동을 하는 구동모듈을 만들었는데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읽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가 시각장애인이 글자를 읽는 방식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점자가 도드라져 있는 부분을 문지르면서 읽는 방식에 주목해 다시 2년간 개발을 거쳐 지금의 스마트워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닷은 시각장애인이 단순히 간단한 문자메시지를 읽는 수준에서 나아가 스스로 점자를 읽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용 ‘닷 미니’를 4월 선보일 예정이다. 닷 미니를 국내 점자도서관에 보급하기 위해 예스24와 계약을 완료했다. 내년에는 이미지·그래프 등을 점자로 구현해 그림이나 수식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닷 패드’도 추가로 선보일 계획이다. 성 대표는 “시각장애인들이 수학은 수식과 그래프가 많아 한 줄 점자로 학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면서 “패드는 점자가 빼곡하게 바뀌어 있어서 이미지를 만질 수 있고 엑셀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에서는 이미지를 촉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기기에 대한 요구가 나왔고 닷은 해당 기술을 이미 보유한 유망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닷 제품군. 사진/닷
이후에는 공공부문에도 주목하고 있다. 성 대표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무인 키오스크, 스마트시티가 화두가 되고 있으나 장애인들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소외된다. 현재는 장애인들이 지하철, 기차역, ATM,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가 없다. 우리는 시각장애인들이 어떤 인프라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점자를 까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관련 법안이 국회에도 올라가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안전상비의약품에 점자 표기를 의무화하는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약사법 개정안)이 윤소하 정의당 의원에 의해 발의됐다. 올해 2월에는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만 법안 통과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닷은 향후 인도, 케냐 등 개발도상국 진출도 바라보고 있다. 올해 매출 목표는 200억~250억원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만든 점자기기가 교육 환경이나 넘어서 취업환경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 지를 주의 깊게 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책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성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취업을 해야만 기기를 살 수 있는 등 제한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정부 지원책에도 점자로 정보를 표현하는 디바이스들이 많이 들어가는 방향으로 규제개혁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