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아경 기자] 그룹을 일궈온 재계 거목들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거나 별세하면서 창업주를 비롯한 2세 시대가 저물고 있다. 대기업의 젊은 총수들이 재계에 하나 둘 등판하고 있고,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은 이미 40~50대 총수들이 경영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다만 경영능력 입증과 지분 승계를 통한 지배구조 구축 등은 이들이 풀어야 할 과제가 될 전망이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재계 29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과 재계 45위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은 각각 경영 퇴진을 선언했다. 재계 14위 한진그룹의 조양호 회장은 갑작스런 별세로 자연스럽게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지난해 말에는 재계 31위 코오롱그룹의 이웅열 회장이 자진 사퇴를 발표한 바 있다. 현재 주요 그룹 가운데 10년 넘게 총수 자리를 지키고 있는 60대 이상 오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유일하다.
창업주나 2세 총수들이 경영권을 내려놓으면서 재계에선 자연스럽게 세대교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선친에 이어 지난 24일 한진그룹의 회장 자리에 올랐으며,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도 박 전 회장을 대신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주도하고 있다.
올 들어 경영 퇴진을 선언하거나 별세한 창업주·2세 회장들이 늘고 있다. (왼쪽부터) 고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김재철 전 동원그룹 회장. 사진/각사
특히 오는 8일께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하는 '2019년 대기업 집단 지정 현황'에는 젊은 총수들의 명단이 더해질 전망이다.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세상을 떠난 구본무 회장과 박용곤 명예회장 대신 '동일인(총수)'에 이름을 올릴 것이 유력시된다.
주요 그룹에선 사실상 지난해부터 경영권 승계가 본격화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해 5월 각각 이건희 회장과 신격호 회장을 대신해 공정위가 정한 총수로 이름을 올렸다. 비슷한 시기에 당시 구광모 LG전자 상무는 선친의 별세로 그룹 회장에 발탁돼 4세 시대를 열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도 지난해 9월 그룹을 총괄하는 수석부회장에 올라 사실상 3세 총수 역할을 맡고 있다.
총수 자리를 물려받기 위해 경영능력 입증에 한창인 재계 3~4세들도 적지 않다. GS그룹과 한화그룹, CJ그룹 자제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GS그룹은 지난해 말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오너 3~4세들을 경영 전면에 배치했다. 재계에서는 허창수 회장의 자리를 이어받을 후보로 허세홍 GS칼텍스 대표이사, 허준홍 GS칼텍스 부사장, 허서홍 GS에너지전무, 허윤홍 GS건설 부사장 등을 꼽고 있다.
다만 온전한 경영권 승계를 위해선 지배구조 구축이 마무리 돼야 한다. 정의선 부회장의 경우 오너 3세 시대를 열었지만 아직 지분 승계가 마무리 되지 않았다. 조원태 회장은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 해 지분 상속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화그룹과 CJ그룹의 3세들은 아직 그룹 최상단에 위치한 지주사의 지분이 미미한 상황이다.
1, 2세대와 달리 글로벌 경기둔화 및 급변하는 경영환경 등을 극복하는 것 역시 3~4세가 풀어야 할 숙제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을 물려주는 나이가 빨라지거나 전문경영인 체제 등 재계에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며 "3~4세들은 경영 실적을 통해 실력을 입증하는 게 가장 큰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아경 기자 akl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