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보선 기자] 금융투자업계가 베트남에 주목하고 있다. 2014년 이후 6~7%대의 꾸준한 경제성장을 달성하며 국가경제의 기초체력을 다지고 있는 데 대한 신뢰가 반영된 것이다. 한국의 해외투자펀드 1445억달러(170조원) 중 베트남펀드 순자산액이 34억5000만달러(4조570억원)에 달하는 등 투자자들의 관심도 뒷받침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브엉 딘 후에(Vuong Dinh Hue) 부총리를 비롯한 베트남 고위급 정부 사절단이 지난달 금융투자협회를 찾아 우리 업계와의 투자파트너십에 대해 논의했다. 협회 창립 66년 역사상 이같은 베트남 고위사절단의 방문은 처음이었다. 이날 사절단에게 한국 자본시장의 발전성과 투자 트렌드에 대해 발표한 팜티탄하(Pham Thanh Ha) 키움증권 전략기획본부 사원을 25일 여의도에서 만났다.
팜티탄하씨는 키움증권에서 근무하고 있는 유일한 베트남 직원이다. 베트남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높아졌다고는 해도 여의도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은 많지 않다. 그는 지난해 5월 그룹 채용을 통해 입사했고, 인턴과정을 거쳐 12월부터 키움증권에 배치돼 현재 전략기획본부 경영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팜티탄하씨는 "대학을 두 군데 다니고 한국으로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되면서 욕심이 많은 친구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고 웃어보였다.
베트남 호치민국립대학에 진학해 한국학을 전공했고, 경제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6년간 2번의 대학생활을 했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후엔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근무할 기회도 얻었다. 한국학과를 전공한 영향으로 베트남에 있는 동안에도 한국 최초의 임플란트 제조사인 오스템임플란트 등 한국 기업에서 이력을 쌓기도 했다.
경영기획팀에서 그는 업계의 글로벌 진출 추세에 맞춰 베트남 시장동향과 전망을 파악한다. 호치민증권, VN디렉트 등 현지 증권사에서 분석한 내용들을 보고하는 한편 적정 투자대상을 찾는 일을 한다.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금융권에서 늘 근무하고 싶었는데, 한국 증권사들이 진출 행선지로 베트남을 보고 있다는 점에서 운도 따라줬다고 생각한다."
실제 금융투자회사들의 베트남 현지진출은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진출 기업이 2년 전에 비해 38% 증가했고, 3월말 기준 16개 금융투자사들이 18개의 현지조직을 운영하는 상황이다. 주식과 파생상품은 물론 민영화 기업과 인프라 투자까지 비즈니스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베트남펀드 순자산액도 2015년말(2억6000만달러)에 비해 13배나 증가했는데, 지난해말(24억달러) 이후에만 42%가 불어났다.
베트남 고위급 정부사절단의 여의도 방문은 베트남 측에서 먼저 제안해 이뤄진 간담회였다. 당시 팜티탄하씨는 한국시장에 대해 브리핑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과 베트남 자본시장을 많이 조사했던 것을 토대로 베트남 사절단에게 주식, 채권시장, 자산운용 현황을 포함해서 한국 자본시장 발전성이나 현재의 투자 트렌드에 대해 발표했다"고 말했다.
또 베트남을 포함해 글로벌 진출에 힘을 싣고 있는 한국 금융사들의 현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지난해 양국 정상회담 이후에 베트남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한국 금융회사의 지점 설치 인허가가 원활하게 진행됐지 않았냐. 이런 점을 높게 평가하고, 앞으로도 더 많은 진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베트남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는 업계 당부도 전달했다."
베트남 측에서 자본시장에 투자하는 데 있어 문제점으로 꼽혔던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점은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팜티탄하씨는 "베트남 현지 증권사 인허가와 관련해 현재 대주주 1인 법인에만 허용해주는 제도를 완화할 수 있도록 건의사항을 검토하거나, 외국인 투자자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증권사 설립에는 여러가지 조건들이 있는데 이것도 행정절차를 축소할 것이라고 한 점 등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베트남에서는 '약속'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 않는데, 부총리의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분위기를 이어 국내 증권사장단 20명과 금융투자협회는 투자기회를 찾기 위해 베트남 하노이와 하이퐁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베트남 정부와 민간의 투자 파트너들을 만난다는 계획이다. 증권위원회(SSC)와는 상호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로 했는데, 이를 통해 양국간 금융투자업, 자본시장, 실물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브엉 딘 후에 베트남 경제부총리와 정부사절단이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를 방문해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는 모습. 사진/김보선 기자
베트남 현지의 주식, 펀드투자 문화에 대해서도 물었다. 최근 7%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면서 거시경제가 안정되고 있어 직간접적으로 매력적인 투자처로 부상 중인 베트남이지만, 아직 베트남의 금융투자에 대한 관심은 낮은 편이라고 했다.
"현재 베트남 주식시장은 한국과 비교할 때 대략 10년도 더 된 예전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식투자에 대한 관심이 아직은 낮은 편이고, 특히 한국처럼 베트남이 아닌 해외국가로 투자의 관심을 넓히는 경우는 드물다고 봐야할 거다."
베트남 VN30지수는 가장 잘 알려진 대표 상품이다. 호치민거래소 시가총액의 약 80%를 차지하는 대표지수로 시가총액과 유동성을 고려해 선정한 30개 종목으로 구성돼 있는데 빈그룹, 비나밀크, 마산그룹 등은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익숙한 편이다. 현재 VN30 시가총액 상위엔 빈그룹, MGM 리조트 인터내셔날, PV가스, 호아팟그룹(HPG), 비나밀크, 비엣젯 항공(VJC), 마산그룹, 빈홈즈, 사이공비어 등이 포진해 있다.
한국인에게도 낯선 금융투자 용어가 넘치는 여의도지만, 팜티탄하씨의 한국어 능력은 상당했다. 그만큼 많은 노력도 뒤따랐다. 그는 "외국인으로서 한국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쉽진 않다. 단어도 그렇고 금융권 출신은 아니기 때문에 지식도 부족하다"며 "회사에서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베트남어로 된 투자자산운용 관련 책을 본 뒤에 교육프로그램에 있는 VOD 강좌를 들으면서 계속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여의도에 있는 동종업계 베트남 직원들과도 교류하며 회사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와 정보도 나눈다고 한다.
한국으로 취업을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도 들었다. 팜티탄하씨는 "한국은 젊은층의 취업난이 있기 때문에 외국인으로서 해외취업에 성공하기 어렵다. 취업 과정에서의 여러가지 행정절차까지 포함하면 결코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한국의 대기업만 보고 취업에 도전하는 경우도 많은데 더욱 막막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도 좋은 기회가 많고 능력이 된다면 성공할 길이 더 많이 열려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면서 "또 취업 이후에는 업무뿐 아니라 한국의 조직문화, 일하는 방식, 한국인 취향도 많이 알아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사실 입사하고 나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럴 때는 베트남에 돌아가 취업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일단 목표를 정한 만큼 끝까지 하고 싶다. 한국에서 더 많이 배우고, 선배들처럼 업무에 완전히 익숙해질 만큼 성장하면 베트남과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양국이 교류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고 싶다. 그런 날이 빨리 올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
김보선 기자 kbs726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