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로 인해 재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가 격화·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소재 확보와 국산화를 향한 기업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일본 정부가 추가 품목 규제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현재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3개 품목에 대한 포괄허가만 제한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전자 천안 사업장을 방문해, 사업장 내 반도체 패키징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업계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로 통관 허가 심사가 어려워져 핵심 소재 수입이 지연되면, 반도체 업체들은 생산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업체들로서는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빠르게 소재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삼성전자는 앞서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의 수입을 신청해 총 9개월분의 소재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관세청의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한국으로 들어온 일본산 반도체 제조용 포토레지스트는 7월 들어 141톤으로 전달(75톤)보다 2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이 잇따라 일본 거래선을 찾아 수급을 챙긴 덕분으로 풀이된다.
다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반도체 식각공정에 사용되는 고순도 불화수소와 디스플레이 제조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한 허가는 지난 7월 수출규제 이후로 한 건도 없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소재를 조기에 확보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일본 협력사에 계속해서 요청을 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가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면서 “지난달 기준 재고가 3~4개월분이 남아있었다고 가정할 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생산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소재, 장비 국산화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핵심소재와 함께 전반적인 부품소재와 장비에 대한 국산화가 가속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일본이 독과점적 공급구조를 확보하고 있는 반도체와 2차전지 소재는 이르면 내년부터 국산화가 시작될 것”이라며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업체들도 증착장비 국산화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2차전지 소재의 경우 일본이 시장점유율 90% 이상으로 독점하고 있고, 공정장비의 경우에도 일본 의존도가 80% 이상이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의 반도체 소재 수입선 다변화 또는 국산화 추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규 소재 테스트 및 공정 전환 과정에서 최소 수개월이 걸려 생산물량이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한일 외교가 극단으로 치달아 이제는 기업들이 ‘각자도생’을 위해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글로벌 공급체인이 형성된 상황에서 소재·장비의 100% 국산화가 어려울 뿐 아니라 수개월에서 수년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어 기업들은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