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전국이 들썩이던 14일 밤. 수원역 육교는 AK 백화점으로 향하는 손님들을 흔들림 없이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중 누군가는 장갑이나 목도리를 살 것이고, 아니면 그냥 역사에 들어가 따뜻한 집으로 데려다 줄 기차에 탈 겁니다.
14일 밤 수원역 AK 백화점 가는 육교 난간에 응원 구호가 적혀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이렇게 저마다 온기를 찾아 건너는 육교의 난간에선 '당신이 있어 빛나는 오늘', '매일 매일 행복하기' 같은 격려 문구가 사람들을 마중하고 배웅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구를 가장 오래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가장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니가 참 좋아 사랑해',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 '당신의 하루가 꽃보다 예쁘길'…. 백화점을 20m 남겨두고 찬 바닥에 앉은 노인은, 하얀 플라스틱 바구니가 채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안엔 천 원짜리 한 장과 동전 몇 개가 들어있었습니다.
가난과 온기의 거리는 육교와 백화점보다, 수원에서 여의도 가는 길보다 멀어보였습니다.
가난과 온기의 거리는 여의도 가는 길보다 멀어보인다. (사진=이범종 기자)
대통령 탄핵 이후를 계산하는 말들이 눈처럼 흩날립니다. 하지만 정세보다 체온이 급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응원봉 흔드는 시민뿐 아니라, 국민의 가난도 무서워할 줄 아는 정치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