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혜정 기자] 삼성의 경영철학은 ‘인재제일’입니다. 이러한 이념은 고 이병철 창립회장의 신조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는 사람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믿었습니다. 평생 인재 확보에 초점을 맞췄던 그는 세상을 뜨기 전 묘비에 ‘자기보다 현명한 인재를 모아들이고자 노력을 했던 사나이 여기 잠들다’라는 글을 새겨 달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고 이건희 선대 회장도 “S급 인재 10명을 확보하면 회사 1개보다 낫다” 며 인재 발굴에 공을 들였습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사진=뉴시스)
S급 인재를 영입하는 데에 오늘날의 삼성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렵게 영입한 인재들이 3~4년 이상을 버티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반도체 패키징 역량 강화를 위해 영입한 TSMC 출신 린준청 부사장은 지난해 말 2년간의 계약을 종료하고 퇴사했습니다. 한국계 스타 디자이너 이지별 부사장도 지난 1월, 2년 6개월만에 퇴임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외에도 최연소 하버드대 전기공학과 교수인 위구연 삼성리서치 펠로우, 아마존 출신 장우승 빅데이터센터장(부사장), 한국과학기술원(KIST) 출신 강설철 제조로봇팀장(부사장)도 지난해 삼성을 떠났습니다. 영입 인재 뿐 아니라 시니어 인재도 해외로 유출되고 있습니다. 작년 초 삼성전자 직원 260여명이 마이크론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기사가 보도되며 화제가 됐습니다. 업계 커뮤니티에는 링크드인을 통해 중국 기업들로부터 매달 이직 제안 연락이 온다는 글이 속속 보입니다.
인재 유출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과거에는 국내에서만 인재 유치 경쟁을 했지만, 이제는 글로벌 단위로 경쟁 상대가 확대됐습니다. 빅테크 기업에는 브랜드 파워로, 중국 기업에는 임금 처우로 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성의 전현직 임직원들을 인재 유출의 원인이 단순히 외부에만 있지 않다고 입을 모읍니다. 사내 문화 탓도 크다는 겁니다.
공통적으로 말하는 원인은 세 가지로 추려집니다. 첫째, 사내 경쟁입니다. 삼성전자의 구성원간 과도한 경쟁 문제는 과거부터 거론됐던 고질적 문제입니다. 금속노조와 각계 연구진이 참여한 삼성 고과 제도 현황과 폐해 실태 연구(2023)'에 따르면 삼성전자 인사시스템에 △하위고과 리미트 △상호감시체계 동료평가제 △부서장의 상시감시 체계인 수시피드백 등 피말리는 고과 경쟁에 따른 고통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구성원 간 업무 노하우를 공유한다든가, 협업을 하는 분위기는 기대하기 힘든 구조인 것입니다. 어렵게 영입한 인재가 들어왔을 때 사내 견제가 심하여 적응이 어렵다는 말도 나옵니다.
두번째는 성과 압박입니다. 한국노동안전연구소와 반올림이 펴낸 <삼성 전자계열사 노동안전보건실태 조사연구보고서(2024)>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동자 45.8%는 우울증을 겪고 있으며, 그 원인은 성과 압박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현직 임직원 인터뷰를 보면 단기적 성과를 도출하느라 장기적인 기술 발전을 위한 연구는 하기 어렵다고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세번째는 관료주의입니다. 과거 삼성은 기민한 대응으로 패스트 무버를 점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옥상옥 보고 체계로 ‘기술 이외에 챙겨야 할게 많은 회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상급자가 어떻게 생각할지를 먼저 걱정하면서 기술적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든 구조인 겁니다.
이 창립회장은 인재 확보보다 중요한 것이 딱 하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인재를 잘 성장시키는 겁니다. 인재가 부족하니 52시간 예외 조항을 만들어 에너지를 최대한 뽑아내자는 생각은 인재를 잘 성장시키는 것이 아닌 인재를 죽이는 정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삼성 위기설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회사는 인재들이 진정 역량을 잘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 자문해 봐야합니다.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