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국민의힘은 21일 오는 6월 지방선거 경기도지사에 출마할 후보를 확정한다. 경기지사 선거는 충청과 함께 이번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로,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반드시 탈환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경선은 김은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대결로 압축됐다. 하지만 처지는 사뭇 다르다. 김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 출신으로 '윤심'(尹心)을 업었다. 유 전 의원은 20대 대선 당내 경선에서 낙선한 뒤 정계은퇴까지 고민했으나 이번 선거로 재기를 노린다. 초선인 김 의원은 공천을 받지 못하더라도 체급을 높인 터라 잃을 게 없다. 반면 유 전 의원에게는 퇴로가 없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6·1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공천 결과를 발표한다. 김은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이 치열하게 경합 중이다. 공관위는 지난 20일부터 21일까지 당원투표 50%, 일반국민여론조사 50% 합산 방식으로 공천심사를 진행했다. 공천이 확정된 후보는 본선에서 경기지사 타이틀을 놓고 김동연 민주당 후보와 대결할 것이 확실시된다. 현재 민주당은 김 후보 외에 안민석, 조정식 의원과 염태영 전 수원시장이 뛰고 있지만 각종 지표에서 김 의원이 큰 차이로 앞서는 상황이다.
21일 정진석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국회에서 6·1 지방선거 대전·세종·충북·충남 광역단체장 경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의 입'을 맡았던 김 의원의 출마엔 윤심이 실렸다는 분석이다. 김 의원은 지역구(성남 분당갑)를 경기에 두고 있어 일찌감치 후보군으로 꼽혔지만 당선인 대변인을 수행하고 있어 선뜻 출마를 결정하지 않았다. 당내 경기도지사 예비후보 중 가장 늦은 지난 6일에야 출마를 선언했다. 초선인 탓에 그의 출마는 흥행을 위한 불쏘시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윤심을 등에 업고 빠르게 당심을 장악했다. 김 의원 측에 따르면 19일 기준으로 선거대책위원회는 김학용 의원(총괄선대위원장) 등 현역 국회의원 4명, 현역 경기도의원 7명, 전직 도지사 4명, 전직 국회의원 24명, 전직 기초단체장 15명, 전직 경기도의회 의원 135명 등 263명이 참여하는 매머드 조직으로 구성됐다. 유 전 의원이 강대식·유의동 의원 등 유승민계를 중심으로 '실무형 선대위'를 조직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선 과정에서 직전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을 내내 압박한 '대장동 저격수' 이미지, MBC 앵커 출신이 가져다 준 인지도와 신뢰도는 김 의원의 자산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5일 "이번 대선 결과를 분석하면서 냉정하게 여론조사도 돌렸는데 가장 정치적으로 인지도가 많이 상승한 분이 김은혜 의원과 원희룡 전 제주지사"라고 말한 데서도 드러나듯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체급과 신뢰도를 많이 향상시켰다는 평가다.
8일 국민의힘 지방선거 출마자에 대한 면접이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경기도지사에 공천을 신청한 김은혜 의원이 면접을 마치고 나오며 경쟁자인 유승민 전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유 전 의원에겐 퇴로가 없다. 그가 경기도지사에 도전한 건 '궁여지책'에 가깝다. 유 전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에서 탈락한 뒤 사실상 칩거했다. 측근들에게 "정치적 소명을 다했다"며 정계은퇴의 뜻을 내비쳤을 정도다. 하지만 전격적으로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택했다. 경기지사를 발판으로 다시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다. 인지도만 보면 유 전 의원이 김 의원을 압도한다. 4선 의원 출신의 유 전 의원은 2017년 19대 대선에선 본선 후보로, 이번 대선에선 경선 후보로 뛰었다. 약점도 있다. 대구·경북(TK) 토박이로 대구에서만 내리 당선된 탓에 경기도와는 연고가 없다. 조직력도 약하다.
유 전 의원이 정치적 고향인 대구를 떠나 경기도로 방향을 튼 건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다는 '배신자 프레임'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앞서 유 전 의원이 이번 대선 경선에서 TK에 상주하다시피 공을 들였음에도 배신자 덫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이 그에 대한 비난 강도를 올렸다. 보수의 심장부인 TK에서 한계를 보인 유 전 의원은 결국 힘 한 번 못쓴 채 경선 패배의 고배를 마셨다. 5년간 절치부심하며 20대 대선을 노렸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여기에다 신년 특사로 자유의 몸이 된 박 전 대통령이 대구 달성으로 돌아왔다. 그로서는 피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초선인 김 의원에게조차 밀려 탈락할 경우 그의 정치인생도 마감할 수밖에 없다.
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약속과 민생의 행보' 일환으로 전남 영암군 대불국가산업단지를 방문,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민의힘 안팎에선 윤심을 등에 업은 김 의원이 유 전 의원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크게 뒤처질 것 같았던 민심에서도 예상 외로 엎치락뒤치락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일 <기호일보>가 <데일리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8∼19일 경기도 거주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국민의힘 등 범야권 주자의 지지율은 유 전 의원이 38.4%, 김 의원이 28.0%였다. 격차는 10.4%포인트로, 오차범위 밖이다. 반면 같은 날 <오마이뉴스> 의뢰로 <리얼미터>가 지난 18~19일 경기도 거주 만 18세 이상 성인 812명을 대상으로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 6명, 무소속 강용석 예비후보 등 7명의 선택지 중 누구를 가장 지지하냐'고 물은 결과 김은혜 의원 27.1%,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22.6%, 유승민 전 의원 18.2% 등으로 나타났다.
두 사람의 신경전은 팽팽해졌다. 유 전 의원은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20대·30대·40대와 중도층에 강한 건 국민의힘 누구도 갖지 못한 강점"이라며 "지금 많은 (경기도 지역)당협위원장들께서 (김 의원에게)줄을 잘못 섰다"고 주장하며 인물론과 중도 확장성을 내세웠다. 김 의원은 19일 경인방송 라디오 '박성용의 시선공감'에서 "경기도지사는 연구원이나 경제학 박사를 뽑는 선거가 아니다"라며 "일꾼, 베테랑을 뽑는 선거"라고 당내 대표적인 경제통인 유 전 의원을 견제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이날 경기도지사 공천을 비롯해 인천·울산·경남 공천도 확정한다. 23일엔 대구·강원·제주 경선 결과를 발표한다. 인천은 유정복·안상수 전 시장, 이학재 전 의원이 경합 중이다. 대구는 홍준표 의원과 김재원 전 최고위원, 유영하 변호사가, 강원에서는 김진태 전 의원과 황상무 전 KBS 앵커가 경선 중이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