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드는 조력존엄사)①'병원 뺑뺑이·투병 생활'로 얼룩진 생의 마지막
'삶의 마감'도 기본권…'존엄한 죽음 인정' 확산 추세
정치권서도 공론화 바람…21대 이어 22대서도 재발의
2024-08-12 17:30:00 2024-08-12 18:10:07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올 초 93세의 드리스 판 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 부부가 자택에서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또 한 번 한국 사회에 죽음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생의 마지막을 병원에서 투병 생활 등을 하며 눈을 감는 한국 현실에선 놀라운 일인데요. 최근 의학이 발달하고 기대수명이 더욱 길어지면서 죽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보는 시각이 늘어나면서 존엄한 죽음 인정은 점차 확산하는 분위기인데요. 정치권에서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의사의 도움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 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조력존엄사법)'이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재발의됐습니다. 하지만 '의사조력자살'로도 불리는 해당 법안을 둘러싸고 종교계와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면서 국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인데요. 인간의 생명을 자의적으로 종결시키는 반생명적인 위험한 법안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조력존엄사'를 둘러싼 논쟁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대수명 중 유병 상태…평균 '16.9년'
 
12일 통계청의 '2022년 생명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평균 82.7세로 남성이 79.9세, 여성이 85.6세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1970년 62.3세였던 기대수명은 40여년이 지나면서 약 20세가량 증가한 것인데요.
 
눈여겨봐야 할 것은 기대수명이 증가한 만큼 본인의 삶에서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유병 기간 또한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실제 기대수명 중 유병 상태로 보내는 기간은 평균 16.9년으로, 10년 전인 2012년 대비 1.7년가량 증가했는데요. 전체 기대수명 중 병을 앓으며 보내는 기간은 남성이 79.9년 중 14.8년, 여성이 85.6년 중 19.0년으로 삶의 5분의 1가량을 아프고 병든 상태로 지내다가 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되는 셈입니다.
 
피할 수 없이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질병과 죽음을 둘러싸고 '좋은 죽음(웰다잉·Well-Dying)'을 고민하는 이들도 늘고 있는데요. '한국리서치'가 지난 5월31일~6월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질병 및 죽음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6%가 '나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내 스스로가 결정하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죽음을 대하는 태도 역시 과거와 달리 굉장히 열려있는 자세가 엿보였는데요. 응답자의 84%가 '나는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64%는 '죽음, 웰다잉 등을 타인과 이야기하기 꺼려지지 않는다'고 응답하며 논의나 생각 자체를 터부시했던 보수적인 경향이 많이 낮아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조력존엄사'를 둘러싼 국내 찬반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병동 모습. (사진=뉴시스)
 
"죽음의 자기결정권" 대 "사회적 타살" 팽팽 
 
'웰다잉'을 고민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국내에서도 환자 스스로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조력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공론화되고 있습니다. 전통적 의미의 안락사와 달리 조력존엄사는 말기 환자가 의사로부터 약물을 받아 스스로 주입해 삶을 마무리하는 형태의 죽음을 말하는데요. 
 
현재 한국에서 '죽음의 자기결정권'은 2016년 제정돼 2018년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임종 단계에 연명치료를 받지 않는 것'까지만 인정됩니다. 본인이 사전에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 놓거나 본인의 의식이 없다면 가족이 합의해 결정할 수 있는데요. 주로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현대의학의 힘을 빈 연명 과정을 피할 수 있습니다.
 
반면 스위스·독일·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캐나다·스페인·포르투갈·오스트리아·뉴질랜드·콜롬비아 등 11개국은 조력존엄사를 인정하고 있으며, 미국과 호주는 주에 판단을 맡기고 있습니다.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캐나다·스페인·포르투갈·콜롬비아 등 7개국은 의사가 약제를 환자에 주입하는 '적극적 안락사'까지 허용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조력존엄사 공론화 바람이 고개를 들면서 찬반 의견도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데요. 생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자는 의견 반대편에는 생명경시 풍조를 부추기고 사회적 타살을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도 거셉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조력존엄사에 앞서 호스피스·완화의료 시스템 확대가 시급하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조력존엄사 논의의 쟁점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조력존엄사를 제도화하려고 한다면 사회적 합의 형성을 위해 제도 도입·시행의 요건과 절차, 한계를 엄격하게 규율해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면밀한 사전·사후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더불어 그 이전에 말기 환자 돌봄 서비스 제공을 체계화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7월12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의 인권적 쟁점과 대안에 관한 토론회 모습.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