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방위비 분담과 동맹 비용
2024-10-15 06:00:00 2024-10-15 06:00:00
제12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이 최종 타결됐다. 한미 당국이 협상을 개시한 이래 불과 5개월 만에, 현 협정 만료를 1년 3개월이나 남겨둔 시점에 타결된 것은 미 대선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염두에 둔 한미 양국의 노력으로 보인다. 금번 협정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 동안 적용되는데, 첫해인 2026년 분담금 총액은 1조 5,192억원으로, 이는 2025년 대비 8.3% 증가된 수치다. 나머지 기간에는 소비자 물가 지수(CPI) 증가율을 반영하고, 연간 증가율 상한선 5%도 도입됐다. 만약 소비자물가지수가 연 3%라고 가정한다면 마지막 해 방위비 분담금은 약 1조 7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외교부는 금번 12차 협상 결과를 지난번 11차 SMA와 비교하면서 ‘합리적’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즉, 최초 연도 증가율(8.3%)이 지난 11차 협상 결과(13.9%)보다 낮다는 점, 11차 협상 때 도입했던 국방비 증가율 연동 인상을 이번엔 소비자 물가 지수로 변경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외교부 평가처럼 초년도 증가율이 지난번보다 낮았고, 이후 증가율도 국방비 증가율(통상 5% 이상)보다 물가와 연동시킨 것은 우리에게 유리한 점이다. 
 
그러나 금번 협상 결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먼저 초년도 증가율 8.3%가 너무 높다. 제11차 SMA 결과와 비교하여 선방했다고 보는 건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제11차 협정은 바이든 행정부 때 타결됐지만 실상은 직전 트럼프 대통령의 무리한 압박의 영향이 컸다. 그래서 13.9% 증가율이라는 파격적 숫자가 나왔던 것이다. 13.9%는 1991년 방위비 분담이 시작된 이래 세 번째로 높은 증가율이었으며, 금번의 8.3%도 그 이전 제8차, 9차, 10차 협정 인상률보다 높아진 수치다. 특히 다년도 협상에서는 초년도 증가율이 제일 중요하다. 이를 기점으로 기본 규모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나머지 연도 증가율을 물가와 연동시킨 것도 이전의 국방비 증가율 연동이라는 비정상을 바로잡은 성격이 강하다. 그동안 한미 간 맺은 방위비 분담 협정 중 다년 협정일 경우 기간 중 인상은 물가 상승률을 적용해 왔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방위비 분담금은 2019년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은 이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금번 협상 결과는 선방했다고 자랑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최악의 협상 결과도 아니라고 평가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앞으로 미국의 방위비 분담 압박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만약 이번 미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금번 합의마저 무효화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트럼프가 걸핏하면 거론하는 무임승차국에 한국은 절대 해당이 안 된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1991년 1.5억 불로 시작한 방위비 분담금이 2030년에는 10여 배로 늘어난다. 동 기간에 주한미군의 규모가 4만 3천 명에서 2만 8천여 명으로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다른 동맹국과 비교해서도 한국의 분담 정도는 실질적으로 최고 수준이다. GDP 대비 방위비 분담금은 우리가 일본, 독일보다 높다(2018년 기준 한국:0.052%, 일본: 0.037%, 독일: 0.015%) GDP 대비 국방비 수준도 한국은 2.4%에 이르고 있어 1%대 수준인 일본과 독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뿐만 아니라 방위비 분담금 외에 한국이 기여하는 포괄적인 안보 분담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측이 SOFA에 근거해 주한미군 주둔을 위한 제반 무상 지원(토지 공여, 기지 주변 정비, 세금 면제)만 해도 3조 원이 넘는다. 또한 카투사 병력지원, 평택 험프리스 기지 건설 비용 부담 등도 10조 원을 상회한다. 
 
또한 분담금 책정 방식도 현행 ‘총액형’에서 ‘소요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총액형은 지원 총액을 먼저 결정한 후 항목별로 배분하는 방식이고, 소요형이란 제기된 소요에 근거하여 지원총액을 결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동안 우리가 총액형을 수용해 왔던 것은 미측의 제반 소요를 충족해 주는 접근보다 총액형이 분담금의 급격한 상승을 예방하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마구잡이식 압박이 들어오고 있다. 차라리 소요를 꼼꼼히 검토해 가는 방식이 나을 것으로 판단된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동맹에도 혜택과 비용이 함께 한다. 문제는 갈수록 동맹 비용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국제 무정부상태에 질서를 제공하는 패권국의 역할을 포기하고 갈수록 자신의 좁은 국익을 추구하는 일반 강대국으로 변모하고 있다. 공공재 제공을 미국 혼자 감당할 수 없다며, 갈수록 동맹국들에게 안보비용 분담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트럼프가 아니라 해리스가 당선되어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금전적인 분담금뿐 아니라 미·중 전략경쟁 시대 연루의 비용도 커지고 있다. 공급망 재편 압박이나 대만해협 위기 연루 위험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우크라이나전쟁 여파로 인한 러시아 시장 상실과 북러 밀착도 마찬가지다. 좁게는 방위비 분담에 대한 치밀한 논리 정립, 크게는 신냉전의 파고에 휩쓸리지 않는 한국 외교의 자율성 확보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