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등용 기자] “저희가 바라는 건 건물주와 대화로 상생 방안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41년 동안 한 건물에서 장사를 해왔는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내쫓으려고만 하니 답답한 심정이다.”(최수영 을지OB베어 점주)
29일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위치한 호프집 을지OB베어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이날은 을지OB베어에 대한 법원의 부동산 강제집행이 예고된 날이었다. 법원의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을지로 상가 점주들과 단골 고객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강제집행이 예고된 시간보다 한 시간여가 흘렀지만 결국 철거 용역 업체 직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노가리 골목의 상생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에 따르면 강제집행 신청서가 관할 경찰서에 접수되긴 했지만 내부 사정으로 인해 허가가 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 철거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을지OB베어 점주와 을지로 상인들은 여전히 노심초사다.
이날 현장에 함께 한 한 점주는 “지금처럼 싸우지 않고 상생했으면 좋겠다”면서 “을지로 일대가 재개발이 되더라도 을지OB베어 만큼은 그 전통을 이어나가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을지OB베어는 1980년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문을 열었다. 이 일대에서 처음으로 안주를 노가리로 팔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이후 비슷한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노가리 골목’을 이루게 됐다. 을지OB베어가 지금 노가리 골목의 시초인 셈이다.
하지만 지난 2018년 을지OB베어는 건물 임대 계약이 종료되면서 건물주와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건물주 측은 을지OB베어에 “임대 계약을 연장할 수 없다”는 의사를 통보했지만, 을지OB베어 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졌다.
법원은 건물주의 손을 들어줬다. 건물주가 제기한 명도 소송에서 을지OB베어는 1심과 2심을 모두 패한 데 이어 대법원 상고마저 기각되면서 가게를 비워줘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 같은 사연을 접한 인근 상인과 단골 고객들은 시민단체와 함께 공대위를 조직하고 을지OB베어의 철거를 막기 위해 법원의 강제집행을 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작년 11월과 올해 3월, 4월에도 강제집행이 시도됐지만 공대위 반발에 막혀 무산된 바 있다.
김종일 공대위 회장은 “일단 오늘은 강제집행이 무산됐지만 언제 기습적으로 시도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점주들은 보증금도 올리고 월세도 더 낼 의향이 있다고 하는데 건물주가 협상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29일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위치한 을지OB베어 앞에서 ‘노가리 골목의 상생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법원의 강제집행을 막고 있다. 사진/정등용 기자
정등용 기자 dyzpow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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