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서윤 기자] 국내 셋톱박스 제조사인 가온미디어에 ‘특허 갑질’한 음향 전문 회사 돌비(Dolby)가 공정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해당 기업은 제품 생산에 필수인 표준필수특허의 기술사용 승인 절차를 임의로 중단하는 등 자신에게 유리한 감사결과에 합의하도록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거래상지위남용행위를 한 돌비 래버러토리즈INC·돌비 래버러토리즈 라이선싱 코퍼레이션·돌비 인터내셔널 AB·돌비 래버러토리즈 인터내셔널 서비시즈 INC 한국 지점 등 돌비 4사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총 2억7000만원을 부과한다고 12일 밝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두고 있는 돌비는 디지털 오디오 코딩 기술 표준인 AC-3 등에 대한 특허권을 보유한 표준필수특허권자다. 표준필수특허란 국제 공식 표준으로 정해진 기술 구현을 위해 필요한 특허를 말한다. 해당 특허가 적용된 기술을 이용하지 않으면 관련 제품 생산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은 돌비의 AC-3를 표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셋톱박스를 비롯한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방송 관련 최종제품에는 돌비의 특허기술이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돌비는 자신의 기술이 구현되는 칩셋 제조사와 해당 칩셋을 탑재한(셋톱박스, 디지털 TV 등) 최종제품 제조사 모두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다만, 최종제품 제조사에게만 특허 실시료(로열티)를 부과하고, 이들이 제대로 실시료를 지급하는지 정기적으로 감사하고 있다.
돌비의 위반 내용을 보면, 이 업체는 지난 2017년 9월 국내 셋톱박스 제조사인 가온미디어에 대한 실시료 감사를 착수했다. 하지만 미지급 실시료 산정과 관련해서는 가온미디어와 큰 견해 차이를 보여왔다.
돌비는 자신이 원하는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2018년 6월경부터 가온미디어의 BP3(특허권자·브로드컴·셋톱박스 제조사 간 유통 플랫폼)를 통한 표준필수특허 기술 사용 승인을 거절했다. 가온미디어가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이미 보장받은 특허기술 사용 권리를 정당한 사유 없이 제약한 것이다. 결국 가온미디어가 2018년 9월 하순 감사 결과에 합의하자 돌비는 곧바로 승인 절차를 정상화했다.
돌비는 자신에게 유리한 감사결과를 종용하기 위해 요식행위에 불과한 BP3 신청 승인이라는 수단을 부당하게 활용했다는 게 공정위 측의 설명이다. BP3 승인 여부가 가온미디어에게 매우 중요한 사안이고 기술 사용 승인 중단 상황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돌비가 원하는 대로 감사결과 합의가 이뤄지자 돌비의 감사부서 담당자는 BP3 승인을 중단한 사실이 협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며 BP3 승인 담당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가온미디어는 공정한 협상 기회 없이 돌비의 요구안대로 감사 결과에 합의하고 미지급 실시료를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 또 셋톱박스 판매 수량 감소, 납품 일정 지연 및 사업상 신뢰 상실이라는 여러 측면의 손해를 입게 됐다.
이지훈 공정위 제조업감시과장은 "표준필수특허권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미 부여한 실시권을 제약해 실시권자에게 불이익을 준 행위를 적발한 이번 조치로 실시권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2일 특허권 남용 등의 행위를 한 돌비에 대해 과징금 2억7000만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사진/돌비 코리아 홈페이지 캡처
세종=정서윤 기자 tyvodlo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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