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을 끌어온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M&A)이 사실상 불발됐다. 유럽 경쟁당국이 두 기업의 M&A는 액화천연가스(LNG)선 시장 독과점이 우려된다며 최종 불허했기 때문이다. 이번 M&A는 한국을 비롯해 해외 5개 경쟁당국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유럽의 심사 통과 여부가 가장 높은 허들이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유럽 경쟁당국의 결정문을 검토한 뒤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에도 성사되지 못하면 대우조선해양은 2번이나 매각 실패를 겪은 기업이 된다. 한화와 포스코 같은 대기업들이 새 주인 물망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들 기업은 손사래를 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을 관리하는 산업은행은 2008년에도 한화에 매각을 추진했다 실패했다. 당시 한화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자금난이 와 두손을 들었다. 한화는 이른바 '할부 결제'를 통해 인수를 진행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산은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번 불발의 결정적인 원인인 유럽의 불허는 사실 예고된 수순이었다. 이제 막 커지는 LNG선 시장 점유율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까지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품을 이유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중공업그룹은 유럽에서 원하는 독과점을 막을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매각 주체인 산은이 애초에 이 변수를 고려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유럽 경쟁당국이 문제 삼은 시점에라도 매각을 재검토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산은이 추진 중인 M&A 중에는 난관을 만나 지지부진한 건이 또 있다. 바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다.
국내 1~2위 항공사의 합병은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미주 노선 등 독과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합병은 인정하되, 독점이 되는 노선은 반납하라는 내용의 '조건부 승인' 인수를 검토 중이다. 다만 알짜 노선을 반납할 위기에 처하면서 대한항공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또한 대한항공에 앞서 HDC현대산업개발로 매각을 추진했다 실패한 전례가 있다.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난 탓이었다.
두 기업 모두 이미 한 차례 실패를 겪었기에 산은은 좀 더 신중한 태도로 인수 후보를 물색해야 했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을 선뜻 사겠다는 곳이 없자 산은은 현대중공업그룹과 대한항공의 오너가 3세가 경영권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이용했다. 결과적으로 산은은 경영권 강화에 힘을 보태고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을 떠넘기려 했다 난관을 만난 꼴이 됐다.
혈세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빠른 매각을 추진하려 했던 상황은 알겠다. 하지만 쫓기듯 팔아버리려다 이도 저도 아닌 게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게 됐다. 산은 같은 거대한 조직이라면, 당장 앞날이 아닌 먼 미래를 봤어야 했다. 매각을 통해 당장 들어가는 세금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오랫동안 살아남아 국익에 지속해서 이바지할 수 방법을 좀 더 고민해야 할 때다.
김지영 산업1부 기자 wldud9142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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