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정부가 조선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국인에 대한 특정활동(E-7) 비자 발급 지침을 개정하자 노사가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력이 부족한 조선사에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지만, 노동계는 조선업 경쟁력 쇠퇴와 위험의 외주화·세계화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노사 간 시각차로 이번 정책을 두고 당분간 갈등이 이어질 전망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법무부는 전날 E-7 비자 발급 지침 개정·시행을 발표했다. E-7 비자는 전문 지식·기술 등을 가진 외국 인력이 필요하다고 인정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비자다.
우선 정부는 용접공·도장공에 대한 쿼터제를 없앴다. 그동안 용접공은 총 600명, 도장공은 연간 300명을 2년간 운영할 수 있었다. 다만 국민 일자리 보호 차원에서 내국인 근로자의 20% 내에서만 외국인 고용을 허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번 조치로 지난 2월 조선 7개사와 사내 협력사 335개 기준 용접공과 도장공은 내국인 근로자의 2만2142명의 20%인 최대 4428명까지 투입할 수 있게 됐다.
도장공에만 적용되던 국내 유학생 특례제도 역시 전기공과 용접공에 확대된다. 의사소통에 따른 안전 문제 예방을 위해 입국 후 1년 내 사회통합 프로그램 이수 조건을 도입하지만, 이는 2024년 상반기까지 유예한다.
삼성중공업 컨테이너선. (사진=삼성중공업)
조선사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내국인이 일하기 싫어하는 부분에 국한해서라도 도입을 추진하는 부분"이라며 "인력 수급에 대한 위기감이 높고, 당장 확보한 수주 물량에 대한 처리 부분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시점에서 그렇게라도 해주는 것이 당장 위급한 상황을 조금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조선업계는 저가 전략으로 추격해오는 중국을 견제할 품질 유지를 위해 각 공정에 필요한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당장 인력 수급에 대한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된 노동에 대한 청년층의 부정적 인식으로 인력 수급 방법이 마땅치 않고, 지난해 조선 3사가 1조원대 적자를 기록한 상황에서 임금을 크게 올리기도 힘들다는 관측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선박 가격이 오랜 기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반면 원자재와 후판 가격이 많이 올랐고, 수익이 악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도 "기업 입장에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선주와의 약속을 지키면서 품질을 유지해야 한다"며 "누구를 고용하든 품질과 생산 관리는 회사의 책임이고 능력이니 제도를 잘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존 안젤리쿠시스호. (사진=대우조선해양)
하지만 노동계는 조선 산업 경쟁력 약화와 위험 증가 등을 우려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19일 성명서를 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다단계 하도급으로 일하는 환경부터 바꾸라며 반발했다. 일본이 2000년대 초 조선 산업 불황 때 조선소 폐업 등으로 대응하고, 이주 노동자를 투입해 기술 경쟁력이 무너진 것을 거론하면서 한국도 같은 길을 걷게 됐다는 주장도 폈다.
김태정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숙련 노동자들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핵심인데, (정부는) 그 지점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며 "한국 조선 산업이 일본과 같은 길을 갈 이유는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 소통이 쉽지 않은데, 언어도 문화도 다른 노동자를 대거 받아들이면 그 과정에서 당연히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세계화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2024년 상반기로 유예한 사회통합 프로그램 이수에 대해서도 "당장 급한 문제부터 해결하고, 나머지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며 "노동자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가 오히려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밀어 넣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속노조는 2019년 1월 8개 조선사 근로자가 원청과 하청을 합쳐 10만1058명에서 지난해 5월 9만771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집계했다. 이 기간 원청 근로자는 4만3483명에서 3만9921명으로, 하청은 5만7575명에서 5만850명으로 줄었다. 노동계는 다단계 하도급에 따른 저임금과 위험한 작업 환경 등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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