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한국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투자자-국가 분쟁(ISDS)에서 2억1650만 달러와 이자를 배상하라는 판정을 받았다. 앞으로 론스타에 이어 엘리엇, 메이슨 등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거액의 ISDS가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ISDS 제도는 오래 전부터 '밀실 심리'와 중재인의 편파 가능성·비전문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최근 론스타와의 분쟁으로 ISDS의 신뢰성 문제가 다시 대두되고 있다. ISDS 제도의 허점을 전문가들의 시각을 통해 살펴봤다. (편집자주)
투자자가 상대국에 제기하는 분쟁해결절차 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 정부 정책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국내 투자자와는 관계가 없다. 말 그대로 국경을 넘나드는 '크로스보더 딜' 과정에서 투자자-국가 사이에 발생하는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로, 소송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ISDS를 통한 분쟁해결은 제기할 수 있다. 즉, 투자자만 원고 입장이 될 수 있고, 상대국은 피고 입장이 되는 식이다. 하지만 ISDS는 소송과 다른 개념이므로 원고·피고가 아닌 투자자는 신청인, 국가는 피신청인이 된다.
ISDS 판정 역시 판사가 판단하는 게 아니다. 변호사, 교수 등 3명의 외국 민간인이 보수를 받고 판정한다. 이들 3명의 중재인은 투자자와 국가에서 각각 1명씩 지명, 양측 합의로 나머지 1명을 선정해 구성된다.
이런 구조에서 ISDS를 제기할 수 있는 투자자로부터 지명 받는 중재인이 투자자 측에 불리한 판정을 내리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전 판정이 추후 ISDS 제기 투자자 측의 중재인을 지목하는데 있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투자자는 ISDS에서 전부 패소를 해도 크게 손해 볼 게 없는 반면 국가는 전부 승소를 해도 ‘본전’만 찾는 구조다. 법무부가 우리나라 로펌인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피터앤김, 미국 로펌인 아놀드앤포터 소속 국제중재 전문 변호사들과 10여 년간 방어하며 일부 승소하는 결과를 얻어냈음에도 한국 정부가 사실상 론스타에 패소한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ISDS 제도는 사실상 투자자에게 유리한 구조로 설계된 것으로 분석된다. ISDS에는 헌법상 공개재판 원칙도 적용되지 않아 비공개로 진행된다.
소송과 중재 차이점. 출처=도서 <ISDS, 넌 누구냐>
그럼에도 ISDS 판정은 법원의 판결만큼 강한 구속력을 가진다. ‘3심제’인 법원 판결과 달리 ISDS는 항소가 불가능한 ‘단심제’로, 단 한 번의 판정만으로 강한 확정력을 갖는다.
국가는 이 같은 ISDS 판정에 불복해 취소 절차를 밟을 수 있지만, 취소 사유가 제한적이라 인용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오현석 계명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의 최근 논문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취소 결정의 최근 동향 및 사례 분석>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으로 중재판정 취소사신청 총 65건 중 판정 전부가 취소된 사건은 총 6건, 일부 취소된 중재판정은 13건(11.5%)에 불과하다.
오 교수는 이 같은 통계를 근거로 “중재판정이 일부 또는 전부 취소되는 경우 2차 중재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중재절차가 지연돼 당사자들의 부담이 크게 증가하면서 단심제인 ISDS의 실효성이 크게 저하된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며 “취소신청은 크게 증가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그 인용률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기존 ICSID 취소 제도의 틀을 깨고 새로운 상소시스템을 도입하자는 등 재판정 취소시스템에 대한 많은 비판과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기존 ISDS 시스템에 많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절대 다수의 중재인들과 로펌 등 국제중재계의 반대가 극명하기 때문에 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이미 2018년 이란 '다야니 가문'과의 ISDS에서 패소한 후, 이에 불복하기 위해 중재지인 영국 고등법원에서 제기했던 중재판정 취소 신청이 무위로 끝난 경험이 있다”며 “(론스타와의) 중재판정 취소절차를 진행하게 되면 기존 취소 결정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ISDS, 넌 누구냐> 저자 노주희 변호사(법무법인 수륜아시아)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전 세계적으로 경제 개발을 시작할 무렵 해외 투자자 보호를 위해 국가간투자보장협정(BIT)에 도입된 ISDS 제도가 실제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부터”라며 “하지만 론스타 사례로 알 수 있듯 당초 취지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우리 정부 측 대리한 변호사들이 디펜스(방어)를 잘하고 있어 앞으로 (론스타 배상 판정 취소, 엘리엇 최종 판정 등)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면서도 “론스타와 마찬가지로 엘리엇이 주장하는 (한국 정부의) 공정·공평 대우 의무 위반이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라,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 회복 수단으로) 사용하는 ISDS 전략을 외국과 투자 협정을 맺거나 기존 협정을 개정할 때 조항 배제 등을 통해 막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한국 정부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국가-투자자 간 ISDS 중재 2일차 심리에서 한국 정부 측 대리인을 맡은 로펌 '프레시필즈 브룩하우스 데린저'의 변호인이 발언하는 모습. (사진=제네바 특파원/연합뉴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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