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연일 달러 강세로 원·달러 환율이 1400원 문턱에 바짝 다가선 상황이다. 미국의 고물가 여파로 3연속 '자이언트 스텝' 가능성이 커지면서 불안심리가 확산하는 데 따른 결과다.
특히 에너지 수급 불안에 따른 유로화 약세, 중국 경기 둔화 등 글로벌 경제 리스크가 확산되면서 1400원을 넘어 1500원을 뚫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서울 외환시장의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373.6원) 대비 17.3원 급등한 1390.9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2009년 3월 30일(1391.5원) 이후 13년6개월 만에 가장 높다.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9.4원 오른 1390.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특히 장중에는 1395.5원까지 올랐다. 장중 고가 기준으로도 2009년 3월 31일(1422.0원) 이후 최고치다.
미 동부 현지시간으로 14일 오전 2시 25분 기준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전장보다 0.04% 하락한 109.78선에서 거래 중이다.
이처럼 환율이 폭등하는 것은 오는 20∼21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세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커져서다.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 대비 8.3% 올랐다. 6월 9.1% 이후 두 달 연속 떨어졌지만, 상승 폭은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8%)를 크게 상회한다.
예상치를 넘어선 소비자물가 지표로 연준의 매파적 정책 실현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기준금리를 단번에 1%포인트까지 높이는 '울트라 스텝' 단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글로벌 악재가 가득한 점도 문제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에너지 수급 불안정성이 확대되면서 유로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고, 중국의 경기 둔화도 교역 비중이 높은 우리 경제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은행은 유럽발 공급 충격으로 인해 원자재 가격이 크게 뛸 경우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낮아지고 물가 상승률은 커질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진단했다.
한국과 미국 간의 기준금리 역전이 초읽기에 들어간 점도 부담이다. 현재 기준금리의 경우 우리나라는 2.5%, 미국은 2.25~2.5%로 상단이 같은 상태지만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순간 이 균형은 깨진다.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커지고 미국의 강한 긴축 기조가 지속되면, 외국인 자금이 증시·채권 시장에서 빠져나갈 가능성도 더욱 커진다. 이는 다시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으로 작용한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8월 이후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 8월 외국인의 국내 주식 투자자금은 30억2000만 달러 순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준의 긴축 강화 우려에도 아직까지는 대체로 양호한 미국 경제 지표 영향으로 투자심리가 개선되며 순유입세가 이어졌다.
하지만 외국인 채권자금은 차익 거래 유인 축소, 만기 도래 규모 증가 등 영향으로 13억1000만 달러 순유출되며 20개월 만에 순유출 전환했다. 특히 연준의 긴축 강화 움직임이 한층 강화된 점으로 미뤄볼 때, 업계는 이번 달 주식 투자자금이 순유입세를 이어가기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연이은 환율 연고점 경신에 상단을 더 열어둬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일단 1350원을 고점으로 보고 있지만 유럽, 중국 경기가 위험해 어떤 이벤트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가능성이 낮을 뿐이지 1500원까지도 열려 있다"고 분석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클수록 환율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며 "이번 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열리지 않는 점이 매우 아쉽다. 한은은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내달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14일 서울 외환시장의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373.6원) 대비 17.3원 급등한 1390.9원에 거래를 마쳤다. 사진은 서울 한 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환율이 표시돼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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