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통신시장 포화로 성장정체에 직면한 국내 통신업체들이 성장 사업군을 떼어내 분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쟁력 있는 사업에 힘을 실어 현금을 확보하는 동시에 저평가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려는 전략이다. 일각에서는 회사 쪼개기로 개별 주주들의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나 통신 이외의 사업군을 키워 매출 구조를 다변화해 장기적 관점에서는 밸류에이션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다. 아울러 통신기업들이 지주사가 아닌 까닭에 분사로 인한 디스카운트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KT(030200)는 지주형회사로 전환을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미디어·콘텐츠 분야에서 KT스튜디오지니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가운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즌이
CJ ENM(035760) 티빙에 흡수합병되고 KT스튜디오지니가 티빙의 3대주주로 올라섰다. 스카이TV와 미디어지니 합병을 의결하면서 방송채널제공사업자(PP)는
스카이라이프(053210) 산하로 뭉쳤다. 금융 분야에선 BC카드 아래 케이뱅크를 둔 구조를 갖췄다.
지난 4월에는 클라우드·인터넷데이터센터(IDC) 사업부가 KT클라우드로 분사해 독립했고, KT스튜디오지니 산하 밀리의서재도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밀리의서재는 지난달 29일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으며, 25일부터 26일까지 수요예측 후 다음달 상장을 계획 중이다. 구현모 KT 대표는 "지주형 회사 전환이 된다면, KT 주가는 더욱 상승할 여력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재차 강조해 오기도 했다.
SK텔레콤 사옥, KT 광화문 이스트빌딩, LG유플러스 용산 사옥. (사진=각 사)
KT가 지난해부터 콘텐츠를 중심으로 분사작업에 나섰다면,
SK텔레콤(017670)은 지난해 분사작업을 일단락하고, 통신 외에 반도체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에서 도약에 나서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1월1일 존속 사업회사를 두고, 앱마켓(원스토어), 커머스(11번가), 융합보안(SK쉴더스), 모빌리티(티맵모빌리티) 부문을 떼어내
SK스퀘어(402340)를 신설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인공지능(AI)반도체 설계 사업부를 사피온으로 분사했다. 유연하고 신속한 경영을 통해 사업 효율을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LG유플러스(032640)는 어린이용 콘텐츠 서비스를 담당하는 아이들나라컴퍼니(CO)의 분사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초 인터넷(IP)TV와 모바일로 서비스 중인 U+아이들나라 사업부를 사내독립기업(CIC)으로 격상시키고, 사무실 위치도 강남 테헤란로로 이전, 우수한 인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황현식 LG유플러스 대표는 지난달 열린 간담회 자리에서 "신사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스핀오프(분사) 방식이 유효한 경우가 많다"며 "현재 사업 진척 상황을 봤을 때 분사를 추진할 경우 아이들나라 첫 번째 주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통신사들이 분사에 적극 나서는 것은 기업가치 높이기의 일환으로 요약된다.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지표 중 하나인 주가순자산비율(PBR)의 경우 지난달 29일 종가기준 SK텔레콤 0.96배, KT 0.55배, LG유플러스 0.58배로 모두 1배를 하회했다.
카카오(035720)와
NAVER(035420)의 PBR이 각각 2.17배, 1.31배를 형성하는 것과 차이가 난다. 주가수익비율(PER) 기준으로 살펴보면 통신사 모두 10배를 밑돌고 있다. 현저히 저평가된 상황이다. 때문에 기업 분사를 통해 역량을 결집하면서 각 사업에서 전문성을 강화해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전략을 짜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투자자 입장에서 가치가 쪼개져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통신기업의 경우 지주사가 아니기 때문에 시장에서 분사로 인해 디스카운트를 받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분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주사의 경우 사업을 영위하지 않기 때문에 분사로 디스카운트를 받을 수 있지만, 통신사들은 이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면서 "시간이 지나 분사된 회사들의 가치가 커진다면 기업가치에도 반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용희 동국대 교수도 "콘텐츠·플랫폼·디바이스·네트워크(CPND) 생태계에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결국은 플랫폼 기업"이라며 "국내 이통사들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플랫폼을 확장해왔지만 (플랫폼 기업 대비) 성장의 제약이 있었고, 가입자 기반을 키울 수 있는 프로젝트나 사업을 확대하면서 플랫폼 영역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기업가치도 올라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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