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김현철 기자] 20대 노동자가 숨진 SPL 평택공장 중대재해와 관련한 형사재판이 4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회사 감사보고서엔 단 한 줄도 기재되지 않은 걸로 확인됐습니다. 같은 기간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소송은 부과부터 환급까지 전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것과 대조됩니다. 중대재해 사건을 고의로 재무 위험에서 배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SPL은 잇따른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부당노동행위 논란을 겪는 SPC그룹의 핵심 자회사입니다.
24일 <뉴스토마토>가 SPL의 2020~2025 사업연도 감사보고서 6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2022년 10월 발생한 평택공장 노동자 사망 사고와 이에 따른 형사재판은 충당부채, 우발부채, 계류 중인 소송, 보고기간 후 사건 등 어떤 주석에도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SPL은 파리크라상(현 상미당홀딩스)이 지분 100%를 보유한 비상장 계열사로, 파리바게뜨에 공급되는 빵 반죽 등을 생산합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평택공장에선 2022년 10월15일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이에 회사 법인과 강동석 당시 대표이사 등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상황입니다.
2022년 10월21일 허영인 SPC그룹 회장(가운데)을 비롯한 계열사 대표자들이 서울 양재동 SPC그룹 본사에서 'SPL 제빵공장 사망사고'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원지법 평택지원은 2025년 1월 1심에서 SPL 법인에 벌금 1억원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6월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을 20억원으로 대폭 상향했습니다. 이는 중대재해 사건이 발생한 법인에 관한 처벌로는 역대 최고인,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SPL은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기울인 바 없는 것으로 인정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20대 노동자 사망사고 발생 이후 항소심이 진행되던 기간 내내, SPL의 감사보고서엔 해당 재판의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2025 사업연도 감사보고서 역시 결산일 기준 11개월 전에 내려진 1심 유죄 판결조차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결산일인 지난해 12월31일은 벌금 1억원이라는 금액이 판결문에 명시되고, 양측 항소로 형이 더 무거워질 가능성까지 열려 있던 시점입니다. 검찰 구형액은 3억원이었습니다. 한 해 전 감사보고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024 사업연도 감사보고서는 1심 선고(지난해 1월21일) 이후인 지난해 4월8일 제출됐습니다.
회계기준에 따르면, 결산일과 재무제표 확정일 사이에 나온 판결이라도 그 원인이 된 사건이 결산일 이전에 있었다면 '보고기간 후 사건'으로 반영·공시를 검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SPL의 사망사고는 2022년에 발생했기 때문에 공시 요건을 충족합니다. 그럼에도 SPL은 이를 주석 어디에도 기재하지 않은 겁니다.
반면 공정위의 과징금 사건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SPL은 2020년 10월 공정위로부터 부당지원행위 관련 과징금 76억4700만원을 부과받자, 이를 그해 잡손실로 처리해 손익에 반영했습니다. 이후 소송 제기와 진행 경과도 감사보고서에 지속적으로 기재했습니다. 결국 소송은 SPL의 승소로 끝났고, 2024 사업연도에 환급액을 잡이익으로 기록했습니다. 해당 연도 잡이익은 82억6108만원으로 전년(5억2225만원)보다 77억원 넘게 늘었습니다. 자사가 낸 과징금을 돌려받는 사건은 부과, 소송, 환급까지 전 과정을 장부에 남긴 셈입니다.
결국 회사에 유리한 사건은 상세히 남기면서, 노동자 사망으로 이어진 형사재판은 통째로 빠진 셈입니다.
이는 다른 기업들의 사례와 비교해도 대조적입니다. 2022년 사업장 붕괴 사고로 노동자 3명이 숨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A사는 2022~2025 사업연도 감사보고서 '우발부채와 약정사항' 주석에 "민·형사상 당사가 피고로 계류중인 소송사건은 총 4건(소송가액 196억1100만원)"이라며 형사소송을 건수와 소송가액까지 매년 기재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법인 벌금이 선고된 B사 역시 사고 당해 사업연도 감사보고서에 해당 사건을 '진행 중인 소송사건' 주석에 포함시켰습니다.
회계기준상 '중요한 정보' 누락 논란 불가피
SPL 같은 비상장 외부감사 대상 기업에 적용되는 일반기업회계기준은 자원의 유출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경우에도 '중요한' 계류 중인 소송사건은 주석에 기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소송은 결과에 따라 재무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 요인이므로, 감사보고서를 보는 누구든 그 사실의 존재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재무제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으면 '중요성' 판단에 따라 생략할 여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1심 판결에 따른 벌금 1억원은 SPL의 2025년도 매출(3307억원)의 0.03% 수준이어서, 금액만 보면 이런 판단도 가능합니다. 문제는 중요성을 금액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게 회계기준의 원칙이라는 점입니다.
회계기준은 금액뿐 아니라 정보의 성격도 중요성 판단 기준으로 봅니다. 노동자 사망으로 인한 형사재판은 투자자와 채권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를 누락한 건 논란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지난 6월 항소심에서 선고된 벌금 20억원이 SPL 장부에 오를지는 내년도 감사보고서에서 확인됩니다.
한편, <뉴스토마토>는 SPC그룹 측에 △중대재해 재판 상황을 감사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이유 △공정위 사건과 판단 기준이 달랐던 이유 등을 질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SPC그룹 관계자는 "확인해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했습니다.
김현철 기자 scoop_pres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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