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이 4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국무조정실이 작성한 국정감사 대응 문건이 일종의 '작전 페이퍼'이자, '가이드라인'으로 의심되기에 이르렀다. 국무조정실과 여당은 '내부자료'라고 선을 그었지만, 4일 시작된 윤석열정부 첫 국정감사에서 정부여당이 문건 대응 논리대로 움직인 사례가 상당수 등장하며 의심을 키웠다.
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민주당 간사인 김종민 의원은 해당 문건을 제시하며 "이런 식의 작전 페이퍼를 만들어 돌리느냐.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 내용대로 질의했다"고 지적하자,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저희가 만들었다. 의원들에게 드린 것은 아니다. 내부자료인데, (어떻게 입수하셨는지)간사님 대단하다"고 난처해했다. 김 의원은 재차 "여당 의원들이 이대로 질의한 사례가 몇 군데에서 나왔다"고 지적했고, 박성근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국감을 앞두고 모든 현안에 대해 각 부처로부터 답변을 받은 것"이라는 해명과 함께 "내부적으로 참고하기 위해 작성한 게 어떻게 유출됐는지 조사 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해당 문건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국감에서도 논란이 됐다. 정필모 민주당 의원은 문건을 내보이며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이 문건을 받은 적이 있느냐. 장관은 (문건의)답변 기조에 따라 대부분 두루뭉술하게 답변했다"고 따졌고, 이 장관은 "받은 기억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후 과기정통부 정책보좌관은 "관련 메일을 받았지만, 오전에 SNS를 통해 관련 문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오후 6시 반 이후 메일 열람을 했다"며 장관에게 전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문제의 대응 문건은 '2022년도 국정감사 상임위별 주요쟁점'이라는 제목으로 총 38페이지 분량이다. 상임위별 주요쟁점과 '모범답안'이라고 할 수 있는 답변기조로 구성됐다. '인사실패 논란에 대한 인사검증 책임',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론스타 관련 공무원 책임론' 등 각종 현안이 망라됐다.
국무조정실이 올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작성한 문건 일부 페이지. (사진=문건 파일 갈무리)
국정감사 첫날 각 상임위를 복기하면 해당 문건의 답변기조가 상당수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영국 여왕 국장 관련'해 문건은 '우리 측은 영국 왕실 및 외교부의 안내에 따라 국왕 주최 리셉션, 국장 장례식 참석 및 조문록 작성 등의 주요 조문 일정을 수행하고 충분한 조의를 표명. 영국 측은 우리 대통령 부부의 참석에 감동했으며, 아주 큰 의미였다고 평가'라고 제시했는데, 이날 외교통일위 국감에서 김석기 국민의힘 위원은 "(대통령이)엘리자베스 2세 여왕 국장이 조문을 가셨고 새 국왕을 만나 조의를 표했다. 조문론에 서명을 마쳤다. 영국 외교장관은 영국 정부를 대표해 '각별히 한국민의 따뜻한 마음과 위로에 영국 국민이 크게 감동했다'고 언급했다"며 문건을 그대로 말했다.
또 '한미정상 환담 성과' 관련해 문건은 '한미 정상은 런던 및 뉴욕에서 여러 차례 만나 미국 인플레감축법(IRA)·금융 안정화 협력·확장억제와 같은 주요 현안에 관해 의미 있는 협의를 가졌다'고 답안을 제시했는데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감에서 문건대로 "우리 외교부로서는 한미·한일 정상회담, 영국 여왕 조문, 이번 순방에서 캐나다를 비롯한 유엔총회 행사 이 모든 것이 의미 있고 성과 있게 진행됐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9·19 군사합의' 부분을 보면 문건은 '취지에 부합하도록 남북이 상호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나, 북한이 위반하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응'이라고 답변을 제시했는데,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방위 국감에서 "그간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계속 위반했고 이제는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때가 됐다. 장관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많은 부분에 대해 공감한다. 북한은 합의사항을 준수하지 않는데 우리만 준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북한 도발 강도를 보면 효용성을 따지겠다"고 답했다. 또 문건 내 '대북 관련'을 보면 '북한 핵실험 등 도발 대비 미 확장억제 실행력 제고와 한국형 3축체계 강화 추진'이라고 답변이 제시됐는데, 이 장관은 "긴밀한 한미공조를 통해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높여 나가고 있다. 한국형 3축 체계의 능력·태세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호(왼쪽에서 두 번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4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관계자와 자료를 살피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건은 '김건희 여사 논문' 관련해 '연구윤리 검증 주체인 대학이 스스로 자정능력을 강화해 연구윤리를 확립하는 것이 바람직함'이라고 답변기조를 적었고,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교육위 국감에서 "개별 논문은 소속기관에서 할 책임이 있다. 학문의 자유, 자율성을 보장하려면 자정 능력을 통해 연구 윤리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문건 존재를 처음으로 알린 김종민 의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국무조정실에서 내부자료라고 해명했는데 여권에 이를 넘겨놓고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한 게 아닌가"라며 "어제 국감을 봐도 여권 질의응답 상당수가 일치한다"고 의심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민주당 의원은 "저희도 의심이 들고 문제를 제기했는데 여권은 현안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종의 답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은 국감도 문건대로 흘러갈 지 주목된다. 특히 문건은 쟁점 상임위 가운데 하나인 법사위 관련해 노란봉투법 논란, 인사실패 논란에 대한 인사검증 책임, 경찰국 신설의 적법성 등에 대한 답변기조를 제시해 놨다. 교육위의 경우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이견, 유보통합 추진과 같은 현안에 대한 답변이 제시됐다. 교육위 민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영호 의원은 "국감을 하기도 전에 이러한 문건을 공유한 것은 유치한 일"이라며 "논란이 된 만큼 앞으로 이 문건대로는 안 하겠지만, 대통령실에서 따로 또 기조가 내려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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