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재훈 기자]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수요 감소에 따른 가격 하락, 재고 증가 등 악재를 맞닥뜨린 가운데 낸드 플래시 시장을 중심으로 1등만 살아남는 이른바 '치킨게임'이 시작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치킨게임은 서로 양보하지 않고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을 뜻한다. 내년 상반기까지 낸드 가격 하락이 이어지면 과거 D램의 사례처럼 또다시 '강자만 살아남는' 구도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하반기 낸드플래시 가격은 낸드플래시는 지난 6월 상승세가 11개월 만에 꺾인 뒤 줄곧 내리막을 걷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메모리카드·USB향 낸드플래시 범용제품(128Gb 16Gx8 MLC)의 고정거래가격은 지난 9월 30일 기준 4.30달러로 전달(4.42달러) 대비 2.55% 내렸다. 낸드 가격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4.81달러를 유지해오다 6월 들어 3.01% 하락했다. 이어 7월(-3.75%)과 8월(-1.67%)에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 (사진=삼성전자)
10월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트렌드포스는 4분기 낸드플래시 가격이 15~20%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3분기 최대 가격 하락폭이 18%였던 것과 비교하면 낙폭이 더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이미혜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낸드플래시 시장은 IT기기 수요의 급격한 위축으로 인해 공급과잉이 지속되면서 가격이 지속 하락중"이라며 "일부 기업의 낸드 플래시 감축 발표가 있었지만 IT기기 수요 등으로 인해 내년 상반기 까지는 가격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낸드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과거 D램 '치킨게임'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D램 시장에서는 2007년과 2010년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진 바 있다. 당시 약 7달러에 육박하던 D램 가격이 1달러 밑으로 떨어지면서 2009년 독일의 D램 메모리 반도체 업체 '키몬다(Qimonda)' , 2010년 일본 유일의 D램 업체 '엘피다'가 각각 파산하면서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마이크론 3강 구도로 시장이 재편됐다. 이들 3사의 D램 시장 점유율은 95%에 달한다.
낸드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옛 인텔 낸드 사업부)을 인수하면서 시장 2위로 올라서긴 했으나 1위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의 점유율이 비슷한 상황이다.
옴디아 자료 기준 삼성전자의 2분기 시장 점유율은 33.3%, SK하이닉스는 20.4%를 기록했다. 이어 일본 키옥시아(16.0%),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각각 13.0%)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국내 기업이 시장의 50%, 나머지 절반을 3사와 중국 YMTC(3.4%)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올 4분기 이들 낸드 업체들의 실적 전망은 모두 어둡다는 분석이다. 특히 스마트폰, 가전 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 비중은 약 90%에 달한다.
남대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4분기 메모리 반도체의 평균판매단가(ASP) 하락폭은 3분기 대비 확대되고 하락세는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낮아진 수요에 대한 기대감과 ASP로 인해 2023년 SK하이닉스가 연간 기준 2000억원대 영업적자를 낼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해외기업들이 속속 감산에 나서고 있어 낸드 가격 내림세가 둔화되고 메모리 사이클이 정상궤도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미국 마이크론은 올 하반기 생산량을 줄이고, 반도체 장비 투자 예산을 30% 삭감하기로 했다. 일본 키옥시아도 이달부터 웨이퍼 투입량을 30%가량 줄일 예정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다른 일반 산업같은 경우는 공장 가동률을 낮춘다든지 감산을 한다든지 선택지가 있으나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라인을 멈춰 세우면 제품이 나올때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린다"며 "공장 가동을 멈추고 시장이 다시 활성화됐을때 타이밍을 놓치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는 돌아올 시장 회복기를 위해 감산을 하지 않겠다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낸드 시장이 치킨게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과거에는 시장에 참여해 있는 업체들이 다같이 싸우면서 가격이 내려갔던 부분인데 지금은 메모리 단가도 낮고 마이크론이나 키옥시아가 생산량을 줄이면서 자연스럽게 재고 수준이 낮아지니까 치킨게임까지는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재훈 기자 cjh125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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