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이재용 체제'를 뒤흔들 수 있는 이른바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이 연말 정국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핵심은 보험사의 자산운용비율 산정 시 주식 보유 제한을 기존 '취득가'에서 '시가'로 변경하는 것으로, 타깃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다.
개정안이 현실화되면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에 변동이 생길 수밖에 없어 삼성으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삼성을 비롯한 재계의 반대 논거인 ①소급적용을 둘러싼 법적 논쟁 ②막대한 매각 대금과 법인세 ③주가 폭락 공포론 ④해외 자본의 침투 등을 반론과 함께 차례로 살펴본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삼성깃발 (사진=뉴시스)
①소급적용을 둘러싼 법적 논쟁
삼성생명법은 보험업법 제106조(자산운용의 방법 및 비율)에 제4항을 신설해, 보험사가 보유한 주식·채권의 가치 평가 기준을 현행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았다. 보험사는 보험금을 적시에 지급할 의무가 있는 만큼 자산운용의 안정성·공익성 원칙(같은 법 제104조)을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대주주 및 계열사의 주식을 총자산의 3%를 초과해 소유할 수 없도록 했지만,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로 평가한다는 보험업감독규정으로 인해 사실상 사문화됐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8.51%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취득원가는 5444억원이지만, 시가로 계산하면 30조원이 넘어선다. 올해 3분기 연결기준 삼성생명 총 자산이 314조3220억원인 만큼 총 자산의 3%를 뺀 나머지 삼성전자 지분 20조원가량을 처분해야 한다. 삼성전자 한 주는 현재 6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재계는 보험업법 개정으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정리를 강제하는 것은 사실상 소급적용이라는 주장이다. 소급적용이란 법이 개정, 시행되기 전에 일어난 일까지 개정된 법에 적용하는 것으로, 헌법에서는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한 건 40여년 전 일이다. 현행 법·규정의 테두리 안에서 매입했으니 삼성생명은 위법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주장이 성립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국회에 "개정안대로 제도를 바꾸되 소급적용하지 말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생명법은 삼성생명을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 가치의 평가 기준을 변경하는 것이기에 소급적용이란 주장은 무리하다는 반론이 뒤따른다. 특히 보험업감독규정이 보험업법 취지에 반하는 만큼 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개정이 필수라는 목소리도 힘을 얻는다. 삼성생명법 개정안을 실질적으로 만들었던 국회 한 보좌관은 13일 <뉴스토마토>와 만나 "소급적용을 둘러싼 법적 문제는 첫 발의 당시에도 없었다"고 했다.
②막대한 매각 대금과 법인세
삼성생명법은 결국 삼성에게 천문학적인 세금을 물리기 위함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보험업법이 개정돼 자산평가 기준이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변경될 경우, 삼성생명은 이른바 '3% 룰'에 따라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30조원 가운데 21조원가량을 팔아야 한다.
과거 매입가격과 매도가격을 고려할 때 상당한 매각 차익이 예상되며, 그중 22%를 법인세로 내야 한다. 규모는 5조원가량으로 예상된다. 과도한 법인세 부담은 투자 저하와 고용률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재계의 고전적 논리에, 삼성생명만 특혜를 입어왔던 현실이 충돌한다. 특혜의 끝은 이재용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배력 유지였다.
12일 코스피가 전 거래일(2389.04)보다 16.02포인트(0.67%) 내린 2373.02에, 코스닥지수는 전 거래일(719.49)보다 4.27포인트(0.59%) 하락한 715.22에 거래를 종료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301.3원)보다 5.9원 오른 1307.2원에 마감했다. 1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사진=뉴시스)
③주가 폭락 공포론
시장에서 제기되는 가장 큰 우려는 삼성생명법이 국민주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선량한 개미들에게 엄청난 악재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보험업법 개정으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이 시장에 대거 풀릴 경우 삼성전자 주가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이재용 회장이 삼성그룹을 지배하는 핵심 고리인 만큼 삼성전자 지분이 시장에 풀리도록 두고보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상훈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삼성전자 시총이 나머지 전체 계열사보다 3배가 높을 정도로 삼성전자는 그룹의 핵심이다. 그런 회사의 지분이 위태로운 상황을 총수일가가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도 "계열사를 동원하든 총수 일가가 사들이든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삼성카드가 2007년 시행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 따라 에버랜드 주식을 처분할 때도 총수 일가가 사들였던 사례도 있다. 현재 유력한 시나리오는 삼성물산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을 팔고 그 돈으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는 것이다. 반응은 시장이 먼저 했다. 삼성생명법 발의 직후 지주그룹이 될 삼성물산 주가가 오르고 매각이 예상되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가 내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삼성생명법 역시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장치를 뒀다. 단기간이 아닌 5~7년 장기적으로 주식을 매각하도록 했다.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매입하는 길도 열어뒀다. 하지만 자사주로 매입하면 의결권이 없어지는 만큼 삼성그룹에 실익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노종화 변호사(경제개혁연대)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도적 보완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④해외 자본의 침투
삼성생명법으로 '주인 없는 삼성'이 될 것이란 우려도 여전하다. 시장에 삼성전자 주식이 풀린다는 가정이 전제됐다는 점에서 기우라는 지적 또한 크다. 이에 총수 일가의 빈 자리를 엘리엇 등 적대적 인수·합병(M&A) 세력이 차지할 가능성 역시 제로에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박상인 교수는 특히 '주인 없는 삼성'이란 주장에 "총수가 없는 삼성이지 왜 주인 없는 삼성인가. 총수 일가의 삼성전자 주식은 5~6%밖에 없는데 나머지 주주들은 주인이 아니라 하인인가"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보험업법의 취지를 생각하며 생산적인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종화 변호사는 "삼성생명의 자산 변동이 최근 1년 사이 조 단위로 컸다. 삼성전자 주가 변동이 컸기 때문이다. 안정성이 중요한 보험사로서는 당연히 피해야 할 사항인데 (이재용 회장의 지배력 유지를 위해)감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상인 교수는 "논리적인 이유가 없으니 겁박만 한다"며 "이재용 회장의 지배권 유지를 위한 삼성의 여러 시나리오 중 경제에 바람직한 방안을 유도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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