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연임 도전에 나선 정통 KT맨 구현모 대표가 연임 적격 평가를 받았다.
KT(030200) 정관에 따라 이사회로부터 차기 대표이사로서 적격성을 입증받은 것이다. 현직 대표 우선심사 후 통과 시 주주총회 투표 직행이 관행이었지만, 구현모 대표는 복수후보와 경선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KT 차기 대표이사 선임에 시일이 더 소요되게 됐다. 다만 경선 레이스에서도 구 대표가 승기를 잡을 경우 추진 중인 디지털 플랫폼 기업(DIGICO·디지코) 전략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관측된다.
구현모 대표는 1987년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한 이후 KT에서만 근무한 'KT맨'이다. 경영전략담당, 비서실장, 경영지원총괄 사장, 유무선 통신·콘텐츠미디어 사업을 총괄하는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 사장을 거쳐 지난 2020년 3월에는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됐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2008년 11월 물러난 남중수 전 KT 사장 이후 KT 출신이 CEO가 된 것은 12년 만이다.
KT CEO로서 32개월동안 역임하면서 10년만의 최고 실적, 9년2개월만에 시가총액 10조 돌파 등 수치로 입증되는 경영성과를 달성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연결 기준 1조5387억원을 기록했다. 누적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 2012년 이후 10년 만이다. 취임 당일인 2020년 3월30일 당시 1만9700원이었던 주가는 지난 8월10일 장중 3만9300원까지 오르며 시총 10조원을 돌파했다.
10년만에 최고 실적·시총 10조원 돌파와 같은 수식어는 취임한 해인 2020년 10월 디지코로 전환을 선언하며 KT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클라우드 기술을 기반으로 기업의 디지털 전환(DX)을 돕는 B2B 서비스로 분야를 넓혀왔다. 지난해 1월 KT그룹 내 미디어·콘텐츠 역량을 KT스튜디오지니로 결집해 콘텐츠 사업을 그룹의 핵심 포트폴리오로 만들며 올해 최고의 히트작으로 손꼽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만들어냈다.
구현모 KT 대표가 AI 발전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KT)
구 대표는 KT가 민영화된 2002년 이후 내부 출신으로서 CEO에 오른 인물이다. 연임까지 완주한다면 내부 출신으로 연임을 완주한 첫 사례가 된다. 이러한 화려한 수식어를 뒤로 하고 구현모 대표는 복수의 CEO 후보 심사를 제안했다. KT 이사회는 13일 "주요 주주가 제기한 소유 분산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를 고려해 구현모 대표가 스스로 복수 후보에 대한 심사 가능성을 검토 요청했다"며 "이를 수용해 추가 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KT의 지분 10.35%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에 대응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국민연금이 대표이사 결정에 목소리를 내겠다고 한 상황에서 정치후원금 관련 법률 리스크 우려가 있는 구현모 대표가 정면 대응에 나섰다는 것이다. 디지코로 이룬 성과에 대해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구현모 대표의 계산대로 이사회의 신임을 비롯해 복수후보와의 경선에서도 승기를 쥐게 된다면 구 대표가 주도하던 디지코 사업에 전격적으로 힘이 실릴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반대 명분도 쉽지 않기에 기존 경영전략을 쥐고 갈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차기 대표 경선이 늘어지는 점은 있지만, 여기서 구현모 대표가 우위를 확보한다면 큰 잡음 없이 차기 대표로 내정될 수 있고, 경영방향에도 힘이 더 실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디지코는 구 대표가 연임에 나선 배경으로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연임 선언을 하며 "디지코가 KT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아직 구조적이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고 판단이 안돼 연임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연임에 성공한 구현모호도 디지코 경영을 더욱 강화하며 디지코 생태계를 본격 확장하겠다는 점을 시사한다.
디지코 전략은 초거대 AI와 미디어를 중심으로 고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초거대 AI는 대규모 서버 시설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용량 연산이 가능한 체계를 말한다. KT는 AI 관련 역량을 집대성해 최근 초거대 AI 믿음(MIDEUM)을 개발했다. AI감성케어뿐 아니라 물류, 의료 등 AI를 접목한 혁신 비즈니스 모델을 본격 내놓을 계획이다. 초거대 AI를 상용화해 기존 산업이 가진 문제를 돌파하겠다는 것이 구 대표의 복안이다. 미디어콘텐츠 사업도 구현모 대표가 아끼는 사업 중 하나다. 드라마 우영우로 성과를 낸 만큼 미디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KT스튜디오지니를 필두로 미디어 밸류체인 파워 키우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구 대표는 KT그룹 미디어콘텐츠 매출액을 2025년 5조원까지 확대해 국내 1위 종합 미디어 그룹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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