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허지은 기자] 보험사에 유리한 손해사정이 가능한 '셀프 손해사정' 관행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보험사가 직접 손해사정을 하거나 자회사를 통한 손해사정은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한국손해사정학회,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금융소비자연맹은 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보험금 산정 공정하고 올바르게 내 보험료 안 아까운 믿음직한 손해평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이날 토론회는 지금의 손해사정제도가 보험 소비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방안을 살펴보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이날 김명규 목원대 금융보험부동산학과 교수는 "보험회사가 주도적인 손해사정을 한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자기손해사정 금지'는 시행해야 할 것"이라며 "보험회사 중심의 현행 손해사정제도로 인해 보험소비자와 보험회사 간 끊임없는 분쟁으로 오히려 보험회사의 보험금 지급관련 민원만 늘어나게 되는 자충수가 됐다"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보험이 소비자 신뢰가 바닥이고 '민원산업'이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삐뚤어진 손해사정제도 때문이다"라며 "손해사정제도 도입의 취지가 무색하게 보험사 마음대로 손해사정을 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손해사정은 보험 사고가 일어났을 때 원인과 책임관계를 조사해 적정한 손해액과 보험금을 산출하는 업무를 말합니다. 손해사정은 보험사가 직접 손해사정사를 고용하는 고용 손해사정과 자회사에 위탁하는 위탁 손해사정, 보험 소비자가 직접 손해사정사를 선임하는 독립 손해사정으로 구분됩니다.
현재 보험업법은 손해사정사가 자신과 이해관계를 가진 자의 보험사고에 대해 손해사정을 하는 '자기손해사정'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험사가 손해사정사를 고용해 손해사정업무를 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습니다. 보험사가 자회사를 통한 손해사정을 하거나 독립 손해사정법인을 통해 손해사정을 하는 것 역시 보험사와의 이해관계를 가진 손해사정 행위라 볼 수 있음에도 가능한 것입니다. 이날 제기된 자기 손해사정을 금지하자는 주장은 보다 적극적으로 보험사의 고용·위탁 손해사정까지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이에 긴급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보험사의 고용·위탁 손해사정을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습니다.
보험사가 손해사정을 대부분 자회사에 위탁하는 '셀프 손해사정'은 관행으로 굳어, 독립성과 객관성 문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 4대 손해보험사(
삼성화재(000810)·
현대해상(001450)·
DB손해보험(005830)·KB손해보험)의 자동차보험 손해사정에서 소비자가 독립 손해사정사를 선임해 사고를 처리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험사 자회사 손해사정법인에 위탁한 경우는 80% 가량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금융당국은 2021년 손해사정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보험사가 손해사정 업무를 자회사에 위탁하는 과정에서 보험금 삭감을 유도하도록 하는 등 손해사정의 객관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소비자를 위한 독립 손해사정이 비용 문제로 활성화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조 회장은 "상법에 소비자손해사정권을 두고 비용을 보험사가 부담하도록 했지만 하위법인 보험업감독규정에는 보험사가 인정하는 것만 그렇게 하도록 했다"며 사실상 독립 손해사정을 위해서는 소비자가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이로 인해 소비자가 선임한 독립 손해사정사가 제출한 손해사정서는 인정하지 않는 횡포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손해사정을 둘러싼 민원은 보험 민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보험 관련 민원에서 80% 가량이 손해사정과 관련된 민원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보험금 산정과 지급에 관련된 민원이 약 62%, 면·부책 결정 민원이 약 17%, 장해등급 산정과 관련된 민원이 1% 가량이었습니다. 마승렬 상명대 특임교수는 "실제 현장에서 보험회사와 소비자 간에 야기되는 분쟁과 민원은 금감원에 제기돼 집계된 사례보다는 더욱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습니다.
백영화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자기손해사정 금지 방안의 경우 보험회사의 업무 수행에 대한 지나친 제한이 될 수 있고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도 있기에 도입 여부를 검토할 경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손해사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은 손해사정과 관련된 보험회사나 손해사정사의 의무·금지행위에 대해 엄격히 감독함으로써 확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손해사정학회,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금융소비자연맹은 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보험금 산정 공정하고 올바르게 내 보험료 안 아까운 믿음직한 손해평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사진 = 허지은 기자)
허지은 기자 hj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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