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계 "대학 재정 지원 권한 지자체 넘어가면 예속·담합 우려"
대학 재정 지원 사업 예산 받고자 눈치 보는 대상만 지자체로
지자체장이 '표심' 생각해 규모 큰 대학만 지원할 수도
"시어머니만 모시다 이제는 시아버지까지 생긴 격"
2023-02-02 16:15:17 2023-02-02 16:15:17
[뉴스토마토 장성환 기자] 정부가 2025년부터 대학 재정 지원 사업 예산의 50% 이상을 지방자치단체에서 집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넘기겠다고 발표했는데요. 이를 두고 고등교육계에서는 대학이 지방 정부에 예속되거나 지역 대학과 지방 정부가 담합하는 부작용 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교육부, 대학 재정 지원 사업 통합해 예산 절반 이상 지자체로
 
교육부는 지난 1일 경북 구미 금오공대에서 열린 '제1회 인재 양성 전략 회의'를 통해 그간 운영하던 특수 목적 대학 재정 지원 사업 가운데 지자체와 협력이 중요한 5개 사업을 통합해 그 예산의 절반 이상을 지역 주도로 전환하는 '지역 혁신 중심 대학 지원체계'(RISE·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구축 계획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발표했습니다.
 
각 지자체가 지역 발전 계획과 대학 특성화 분야 등을 고려해 'RISE' 계획을 수립해오면 교육부는 해당 지자체와 협약을 맺고 이에 근거해 통합된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그 규모는 총 2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교육부는 추후 다른 중앙부처의 대학 지원 사업도 '고등·평생교육 지원 특별회계'로 편입한 뒤 'RISE'로 전환해 지자체 주도의 대학 재정 지원 방식을 점차 확산시켜나간다는 계획입니다.
 
고등교육계가 2025년부터 대학 재정 지원 사업 예산의 50% 이상을 지방자치단체가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경북 구미 금오공대에서 열린 '제1차 인재 양성 전략 회의' 도중 발언하고 있는 모습.(사진 = 뉴시스)
 
고등교육계 "지역 대학이 지방 정부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
 
하지만 고등교육계는 대학 재정 지원 사업 예산 집행의 권한이 지자체로 넘어가는 것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학들이 대학 재정 지원 사업 예산을 받기 위해 교육부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 대상만 지자체로 옮겼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김용석 대학정책학회 학회장은 "결국 각 지역 대학들이 자신들의 목숨줄인 사업 예산 권한을 가지고 있는 지방 정부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아무런 제도적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3년 만에 이렇게 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 대학 관련 문제들이 너무 골치 아프니까 지자체에 권한을 넘기고 손 떼려는 느낌"이라고 밝혔습니다.
 
양성렬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사교련) 이사장도 "각 지자체별로 대학 재정을 지원할 경우 지자체와 지역 대학의 담합에 의해 잘못 운영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걱정했습니다.
 
"지자체장이 '표심'만 생각해 권한 악용할 수도"
 
지방선거로 선출되는 지자체장에게 대학 재정 지원 사업 예산 집행의 권한을 주면 포퓰리즘에 빠져 규모 있는 대학을 중심으로만 지원할 수도 있다는 의견까지 나옵니다. 지자체장이 지역 대학의 발전보다는 '표심'만 생각해 권한을 악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 관계자는 "정부 부처와 달리 지자체장은 선거로 선출되는 데다 3선까지 가능하다. 결국 다음 선거 때 더 많은 표를 줄 수 있는 규모가 큰 대학에 지원을 몰아주지 않겠냐"면서 "대학 재정 지원 사업이 정치적으로 활용될까봐 걱정된다"고 우려했습니다.
 
대학이 신경 써야 할 대상이 교육부 1곳에서 지자체까지 2곳으로 늘어났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교육부가 대학 재정 지원 사업 예산 권한 전체를 지자체에 넘기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교육부와 지자체가 협약을 맺고 지원하는 방식인 만큼 양쪽 모두의 눈치를 봐야한다는 뜻입니다.
 
대구의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 재정 지원 사업 예산의 권한을 지자체에 온전히 넘기는 것도 아니고 절반으로 나누면 우리 같은 대학 입장에서는 부담만 가중된다"며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그간 시어머니 한 분만 모시면서 살다가 이제는 시아버지까지 두 분을 모셔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등교육계가 2025년부터 대학 재정 지원 사업 예산의 50% 이상을 지방자치단체가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사진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일 경북 구미 금오공대를 방문해 '지역 혁신 중심 대학 지원체계(RISE)' 구축 추진 계획을 브리핑하고 있는 모습.(사진 = 교육부 제공)
 
장성환 기자 newsman9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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