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소에서 전기차가 충전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정예지 기자] 제2 정유사를 꿈꾸는 많은 대기업들이 주유소에서 충전소 전환을 기대하며 전기차 충전사업에 진출하고 있지만 정유산업만큼 진입장벽은 높지 않습니다. 정부가 올해 전기차 충전사업 수행기업을 선정했는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섞여 작년보다 숫자가 대거 늘었습니다. 기술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여 대기업이 충전사업 먹거리를 포기해야 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8일 환경부와 업계에 따르면 올해 전기차 완속충전시설 보조사업 수행기관(기업)은 모두 30개가 됩니다. 전년 25개에서 늘어난 숫자입니다. 본래 정부는 수행기관을 점수 매겨 상대평가로 상위 25개 업체만 선정했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말 지침을 개정해 일정 점수(85점) 이상 기업은 모두 수행기관이 될 수 있도록 절대평가로 바꿨습니다. 그 결과가 30개입니다. 올해부터는 절대평가가 되어, 앞으로 기준만 채우면 누구든 선정될 수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경쟁이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올해 완속·급속충전시설 수행기관 선정 명단을 보면 GS칼텍스, GS커넥트, LG헬로비전, SK에너지, 한화솔루션, 현대엔지니어링, 신세계 I&C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계열사가 즐비합니다. 본래 에너지 사업 전문인 GS와 SK를 비롯해 LG와 한화, 현대차, 신세계까지 이 사업에 발 담그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영채비, 매니지온, 보타리에너지, 서울씨엔지, 성민기업 등 중견, 중소기업까지 모두 36개 업체가 수행기관에 선정됐습니다.
대기업은 전기차와 전장 사업 등 유망 신사업에 연계해 충전사업 시너지를 발굴해왔습니다. 그 연장선에 충전사업도 속합니다. 기존에 정유사업 등 에너지 분야 입지가 공고한 SK, GS 등이 적극적인데 LG헬로비전, 현대엔지니어링 등 비에너지 주력 업체가 가세한 게 눈에 띕니다. SK, GS 등은 기존 주유소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유리하나 여타 대기업이 경쟁대열에 합류한 것은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최근 반도체 수출이 주춤한 반면 전기차는 고속성장세를 보이는 만큼 대기업이 연관 신사업에 눈독 들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LG전자가 인수한 전기차 충전기 전문업체 애플망고는 GS에너지와 GS네오텍이 출자에 참여하는 등 대기업 간 새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합종연횡하는 동향도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기차 충전사업은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성장시장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전기차 충전기는 2020년도 말 기준 7만2105기에 이릅니다. 1만개를 조금 넘는 전국 주유소 숫자를 이미 7배나 초과했습니다.
정부는 2025년까지 전기차 누적 보급대수 113만대, 급속충전기 1만2000곳, 완속충전기 50만기로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전기차 충전 기반시설 구축 사업 예산도 지난해 2005억원에서 올해 3025억원으로 크게 늘렸습니다.
대기업이 유망 신사업에 욕심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더군다나 전기차에서 연결된 전장사업과 수직계열화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은 대기업을 유인합니다.
하지만 중소기업 역시 이 사업에 활발히 진입하면서 기술진입장벽은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주유소는 소방법에 따라 진입 규제가 존재하나 기존 주유소에도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주유소가 선제적으로 완전 충전소로 전향할 가능성도 높지 않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충전기는 아파트 단지나 사업장 등 다양한 장소에 설치될 수 있어 소방법 등 규제가 까다로운 주유소와 다르다”라며 “주유소는 진입장벽이 존재하지만 충전기는 그렇지 않아 산업적인 측면에서 대기업에 매력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실제 전기차 보급 활성화를 위한 정책 취지를 고려하면 향후 충전기 사업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경쟁해 대기업 과점시장이 형성되는 것보다 다양한 공급업체가 존재하는 게 소비자 측면에서 유리합니다.
이 때문에 충전기 사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논의도 전개될 수 있습니다. 대기업이 제2 주유소 신사업 측면에서 전기차 충전사업에 욕심을 내지만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출혈경쟁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한편, 충전시설 보조사업은 사업장이나 공동주택에서 충전기 설치를 신청하면 정부(환경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태입니다. 그 설치사업 수행기관은 정부가 매년 선정합니다. 신청자는 사업수행기관을 선택할 수 있으며 수행기관은 현장조사 및 계약을 진행해 성사되지 않으면 후순위 사업수행기관에 기회가 넘어가게 됩니다. 사업수행기관은 충전기 설치보조금을 신청하고 환경공단이 접수해 충전기 설치 후 지급하는 절차로 이뤄집니다.
그간 사업자를 통해서만 설치 신청이 가능했던 제도도 완화돼 공동주택 주민 대표 등 설치 희망자가 직접 신청할 수 있게 됐으며 설치 의무 대상도 기존 500세대 공동주택에서 100세대로 바뀌는 등 지난해 기준이 확대됐습니다. 이처럼 향후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소기업이 대거 진입한 만큼 대기업이 시장 독점력을 확보할지 불투명합니다.
이재영·정예지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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