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일본의 전쟁 가능 국가 전변에는 찬성하고,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94) 할머니의 '대한민국 인권상' 서훈은 취소하는, 윤석열정부의 대일 화해 드라이브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주도하고 있다고
(일본의 ‘반격능력’, 양금덕 할머니 그리고 김태효) 지난해 12월에 썼습니다.
김 차장은 그 뒤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발표와 도쿄 한일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과 상황을 주도했음을 그 스스로 드러냈습니다.
도쿄 정상회담 직후 언론인터뷰에서 그는 “주고받기식이 아니라 먼저 한국이 해나갈 일을 해 나가겠다”, “우리가 하나 뭘 할 테니 일본 정부는 이걸 해다오 하는 접근을 꾀하지 않았다”, “사실 일본이 깜짝 놀랐다. ‘이렇게 하면 한국 국내 정치에서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우리(일본)로서는 이것이 학수고대하던 해법인 것 같다”고 소개했습니다.
애초부터 일본 요구를 다 수용하기로 했기 때문에, 밀당도 협상도 없었다는 얘깁니다.
윤 대통령, 인도·태평양전략 강조…아베 창안, 트럼프 수용한 미·일의 대외전략
4월 한미 정상회담,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한미일 정상회담만 보고 달려가는 윤석열 정부는, 일본에 너무 쉬운 상대였습니다. 오죽했으며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명시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기시다 총리의 입으로 직접 말해 달라"는 최소한의 요청까지 가뿐히 무시해버렸겠습니까?
한일정상회담 발표문만 비교해봐도 기시다 총리가 몇 수 이상 고수였습니다. 크게 보면 북한과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자리임이 분명함에도 기시다 총리는 “북한과의 대화의 창은 열려 있다”고 했고, “고위급 한중일 프로세스 조기 가동”을 언급해 북한과 중국에 대해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면 윤 대통령은 두루뭉술하게 동북아 평화와 세계평화를 말했을 뿐입니다.
’인도·태평양전략‘ 관련, 윤 대통령의 발언도 그렇습니다. 일본의 대외 전략을 한국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는 것도 어색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게 Made in Japan이라는 겁니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아베 전 총리가 2007년에 중국 견제를 목표로 처음 제기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공통 대외전략이 된 것인데, 윤석열정부는 내용은 물론 이름도 안 바꾸고 그대로 베껴 쓰고 있습니다. 일본에 한국은 자신의 국제 전략에 포섭돼 버린 존재가 된 것입니다.
도쿄 정상회담 이후에도 일본은 노회했습니다. 정부 부대변인 격인 관방 부장관이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위안부 문제 그리고 현안이라는 포장 아래 독도 문제를 언급했음을 공개해, 윤석열정부를 흔들고 있습니다. 심각한 외교적 무례임에도 윤 정부는 제대로 항의도 못 하고 있습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지난 3월 6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태효 "한미일 안보 협력 말고 다른 길은 없다"…한일동맹 추진?
김태효 차장은 2006년 논문 <한일관계 민주동맹(Democratic Alliance)으로 거듭나기>에서 “한일관계는 군사동맹 관계를 지향할 경우 이것이 한미일 3자 간 다자동맹 관계를 야기함으로써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오히려 한국의 활동반경을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며, 한일 군사동맹 결성에는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오바마 정부 때부터 미국이 중국 견제를 기본전략으로 설정하는 지각변동이 발생했고 이는 트럼프 정부와 바이든 정부를 거치면서 더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간 김 차장의 행태를 볼 때 그는 북한 핵문제 고도화와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한일동맹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는 2020년 7월 <조선일보>에 쓴 <한미일 안보 협력 말고 다른 길은 없다> 칼럼에서 “국가 존립이 걸린 안보문제에서 한국의 가장 긴밀한 파트너는 미국과 일본이 돼야 한다"며 2006년 논문과는 확연히 달라진 기조를 보였습니다.
윤석열정부, 양금덕의 굽은 등을 넘어갈 수 있을까
대선 출마 때부터 입이 닳도록 외쳤던 윤 대통령의 인권과 법치가 얼마나 허망한 구호였는지, 웅변해 주는 인물이 바로 양금덕 할머니입니다.
윤석열정부는 ‘엄중한 국제정세’, ‘대승적 결단’이라는 휘황찬란한 명분으로 압박하고 있으나, 양 할머니를 비롯한 생존피해자 3명은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는 식으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16일 대법원 판결 이행을 강제하는 법적 절차에 돌입했습니다.
외교는 늘 ‘투트랙-양면’ 게임입니다. 대외협상만큼 국내 지지가 중요합니다. 일본과는 협상 자체를 하지 않았으니 쉬웠겠으나 바로 그 때문에 국내 지지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윤 대통령과 김 차장은 집권 1년 차의 거친 기세로 몰아치고 있긴 하지만, 과연 구순을 훨씬 넘은 양 할머니의 굽은 등을 넘어갈 수 있을까요?
황방열 통일 ·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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