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정권 압박에 구현모 KT 현 대표가 108일만에 연임을 포기한 데 이어 KT 이사회가 최종 선정한 차기 대표 후보자 윤경림 KT 그룹포메이션부문장(사장)도 보름 만에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정부·여당의 압박에 검찰의 배임·일감 몰아주기 등 혐의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만큼 향후 KT 경영 파행이 불가피할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결정으로 풀이됩니다. 이달 31일 열리는 주주총회를 끝으로 임기가 끝나는 구현모 대표 이후 경영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차기 대표를 위한 모집공고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으로, 경영 공백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윤경림 사장 사임의사 표명
23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윤경림 사장은 차기 대표 후보자 지위에 대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신업계에서는 KT의 차기 대표로 내정된 윤경림 사장이 사의를 표명한 데 대해 "국내외 자문사들이 윤경림 후보자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히고 있고, 외국인과 일반주주의 표심을 받아 표대결에 이길 수도 있겠지만, 설령 대표로 선출된다고 해도 정부와 여당의 압박이 지속되면 원만한 경영이 어려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 사장. (사진=KT)
윤경림 사장은 공개경쟁공고로 차기 대표 선임이 재추진된 이후 18명의 사외후보자와 16명의 사내후보자(구현모 대표 포함)와 경합을 통해 지난 7일 이사회 면접을 통해 최종 대표 후보 1인으로 확정됐습니다. 당시 이사회는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전문성을 바탕으로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글로벌 디지털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미래 비전을 명확히 제시한 점에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하지만 여권은 윤경림 사장이 차기대표 주요 후보로 압축됐을 때부터 '구현모의 아바타', '이권 카르텔'이라고 비판해왔습니다. 검찰은 수사도 착수했습니다. 시민단체가 구 대표와 윤경림 사장에 대해 배임·일감 몰아주기 등 혐의를 고발한 데 따른 것입니다. KT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구현모 대표의 친형이 운영하는 자동차용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을 2021년 7월 현대차가 인수하는 과정에 구 대표와 윤 사장이 관여돼있는 내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리=뉴스토마토)
대표 공고부터 확정까지 빨라야 한달…경영공백 장기화 불가피
윤경림 사장이 차기 대표 후보자에 사퇴하면서 31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는 대표 선임 안건 없이 치러질 예정입니다. 이날 임기가 끝나는 구현모 대표 이후 사실상 KT는 경영 공백 사태를 맞게 됩니다. 당분간 대표 대행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KT 정관에 따르면 대표이사 유고 시 직제규정이 정하는 순서에 따른 사내이사가 대표 직무를 대행하게 됩니다.
대표 대행이 이끄는 KT는 장기화될 수 있습니다. 차기 대표 선임을 위한 공고부터 확정까지 빨라야 한달가량 소요되는 탓에 다음달까지 차기 대표 체제를 만들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2월에 시작된 차기대표 공개 경쟁 모집도 이사회의 대표 선임 재추진안 의결부터 최후 1인이 확정되기까지 한달가량 걸렸습니다. KT는 당장 사내·외이사 변화도 앞두고 있습니다. 최근 벤자민 홍, 이강철 사외이사가 사퇴하면서 6명 사외이사·2명 사내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번 주총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강충구·여은정·표현명 사외이사의 선임 안건도 예정돼 있습니다. 이들이 선임되지 못해 이사회 개편까지 가야하는 상황이라면 차기대표 선임 일정은 더 뒤로 밀릴 수 있습니다. KT 한 관계자는 "대표 선임 후 임원 인사 등 일정을 포함하면 사실상 상반기를 다 날리게 됐다“고 토로했습니다.
"기업 자율 결정·시장경제 훼손"
이번 KT 차기대표 선임 관련 사태에 대해 기업의 자율결정이 훼손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구현모 대표에 이어 윤경림 후보자까지 정부·여당의 노골적인 공세를 못 버티고 결국 두 손을 들었다"며 "윤석열 정부의 자유 시장경제 질서 훼손이 도를 넘었으며, 민간기업까지 흔들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아울러 "여권은 KT 등 민간의 자율적 결정을 존중하고, 개입을 중단하기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사회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KT새노조는 "연이은 이사회의 후보 선출 실패는 애당초 자기들의 인력 풀 내에서만 고르려는 아집 끝에 무리하게 인선을 진행한 데서 비롯됐다"며 "이러한 혼란을 초래한 이사회도 책임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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