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허지은 기자] 보험업계가 유병자 대상 보험 상품 가입 기준을 완화하고 있습니다. 계약 전 입원이나 수술 등 병력 고지 기간을 축소하는 등 보장성 보험 판매 활로를 찾는 모습입니다.
KB손해보험은 업계 최초로 계약 전 병력 고지 의무 기간을 3개월에서 2개월로 줄인 유병력자 대상 보험 'KB 슬기로운 간편건강보험 Plus'을 출시한 것으로 12일 확인됐습니다. 첫번째 고지 항목인 입원·수술·추가검사 의사 소견 여부를 확인하는 시점을 한달 가량 줄인 것입니다.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자도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의 가입 기준을 낮춘 상품입니다.
계약 전 알릴 의무는 보험 가입 전에 소비자가 병력 관련 검사나 진단, 수술 등을 받았는지 보험사에 알려야 하는 내용입니다. 고지의무라고도 말하는데, 보험사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보험료나 보장 범위를 조정하게 됩니다. 이렇다보니 병력이 있는 소비자에게는 보험 가입 문턱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요. 만약 보험료 상승이나 보상이 제한되는 부담보를 걱정해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을 경우 보험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KB손보 관계자는 "보험가입 시점 기준 2~3개월 이전에 입원·수술·추가검사 소견이 있는 고객이라면 한 달 가량 대기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며 "과거 질병 이력이 존재해 보험 가입이 어려운 중장년층 유병자 고객이 편리하게 가입할 수 있도록 고지의무 기간을 축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유병력자 보험 가입 허들을 낮추는 움직임은 보험업계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삼성화재(000810)는 지난 10일 유병력자도 가입이 가능한 임산부 보험을 출시했습니다. 당뇨나 고혈압 증상이 있는 임산부들은 가입이 어려웠지만, 심사 기준을 간편화해 가입이 용이하도록 한 것이 특징입니다. 간편 고지 사항은 △3개월 이내 입원·수술·추가검사 필요 소견 여부 △2년 이내 입원·수술 여부 △5년 이내 암·뇌졸중·심근경색·협심증·심장판막증의 진단·입원·수술 여부 등 3개 항목입니다.
교보생명은 지난달 유병력자도 쉽게 가입할 수 있는 '교보간편가입암보험'을 내놨습니다. 역시 3가지 주요 고지항목에 해당하지 않으면 가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년 내 입원·수술 이력과 5년내 암·간경화 등 진단 입원 수술 이력이 없으면 가입이 가능합니다. 신한라이프도 유병력자가 고지 항목 통과 시 간편심사형 상품으로 가입할 수 있는 '신한 홈닥터의료비보장보험'을 이달 초 출시했습니다.
유병력자는 병력이 없는 사람에 비해 발병 비율이 높습니다. 보험사로서는 가입심사를 보다 꼼꼼히 하고 보험료도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럼에도 최근 유병력자 상품군을 늘리고 기준을 낮추고 있는 건 보험 가입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데다 새 회계기준(IFRS17) 하에서는 보장성 보험 판매가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조영현 보험연구원 금융시장분석실장은 지난 5일 '2024 보험산업 전망과 과제' 세미나에서 내년 보험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가계 초과저축이 감소하는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입니다. 보험 가입 이후 처음 납입하는 보험료인 '초회보험료'는 9조9000억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올해 대비 22% 감소한다는 의미입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IFRS17이 적용되면서 보장성 보험을 판매해야 실적 개선에 유리하지만, 인구 감소와 경제 위기로 보험을 가입하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며 "보험 가입 수요를 발굴해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기도 소재 한 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허지은 기자 hj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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