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검찰이 기밀 수사에 써야할 특수활동비를 격려금과 포상금 등으로 지급하며 기획재정부 예산 지침을 어긴 정황이 시민단체들에 의해 공개됐습니다.
세금도둑잡아라와 뉴스타파 등 시민단체와 언론으로 구성된 '검찰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은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특활비 집행 내역을 분석한 결과를 12일 발표했습니다.
취재단은 지난 2017년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5년 8개월분의 특활비 기록을 분석했는데, 950쪽에 달하는 기록에는 869건 집행 내역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고양지청이 집행한 특활비는 3억 5766만5300원입니다. 고양지청은 알파벳 패턴의 잉크로 집행내역 등을 가렸지만 취재단은 이를 복원해 697건은 판독, 64건은 부분 판독했습니다.
수사활동에 절반도 안 쓰여
이 중 714건을 집행 유형별로 분류한 결과 특활비 집행 사유는 △수사활동 49.2% △정보교류활동 8.9% △검거활동 7% △공판활동 3.8% △집행활동2.7%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중 수사활동 지원 또는 수사업무 지원이라고 적힌 건은 529건으로 전체의 60.8%, 금액으로는 1억 7606만8500원으로 전체의 49.23%를 차지했습니다.
유형별 건당 지출 금액은 '정보교류활동'이 약 60만3345원으로 가장 컸습니다. 반면 검거활동의 경우 대부분 집행과 수사관에게 지급됐는데, 정보교류활동의 절반 수준인 건당 평균 32만8434원으로 확인됐습니다.
취재단은 "수사활동을 지원하는데 쓰였다고 적힌 지출 건을 제외하면 대부분 검사들이 누군가와 정보교류 활동을 한다는 명분으로, 또는 재판을 담당하는 검사에게 공판활동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특수활동비가 꾸준히 나갔다"고 지적했습니다.
고양지청 김국일 전 지청장이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옮기기 3일 전인 2018년 7월15일 일요일에 특활비 150만원을 현금으로 '셀프 수령'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김 전 지청장은 "수사 및 정보 활동 등 경비집행의 목적달성에 현저히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다"며 집행내역 확인서 작성을 생략하고 결재를 직접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국일 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장은 취재단에게 "인사 발표 이후 두문불출하던 때였다"며 "일요일에 출근했을리 없고 (특활비 수령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부서별 동일 금액 나눠주기 반복
기밀 수사로 볼 수 없는 '부서별 나눠주기'도 반복됐습니다.
2018년 8월 23일 고양지청에서 100만원 1건, 50만원 4건의 특수활동비가 집행됐습니다. 이날 집행내역기록부에 까맣게 칠한 알파벳 패턴으로 가려진 수령인 이름과 직함은 '신호철 차장검사'로 복원됐습니다. 복원된 집행사유는 '수사 지휘업무 등 수사활동 지원'이었습니다.
같은 날 집행된 50만원짜리 4건의 집행사유도 복원했는데 각각 '공안사건 수사활동 지원', '환경범죄 수사활동 지원', '마약범죄 수사활동 지원', '조세범죄 수사활동 지원'으로 나타났습니다.
공안·환경·마약·조세는 각각 고양지청 형사 1·4·2·3부의 담당 업무입니다. 고양지청 각 부서별 분장된 업무 역할을 명목으로 같은 금액의 특수활동비를 같은 날 똑같이 나눠 집행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수사정보 교류 활동? 기밀 수사로 보기 어려워"
2019년 11월 19일에는 '수사정보 교류활동 지원'이라는 동일한 집행사유로 5명이 100만원씩 같은 금액의 특수활동비를 현금으로 수령했습니다. 복원된 수령인 이름과 직함은 '차장검사'와 '1·2·3·4부장검사'로 확인됐습니다.
그 다음 달인 2019년 12월17일에도 동일한 집행사유로 '2·3·4 부장검사'와 직함을 복원할 수 없었던 불상의 1인까지 총 4명이 똑같이 100만원의 특수활동비를 현금으로 수령했습니다.
취재단은 "특별히 기밀이 필요한 수사에 집행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대목"이라며 부서별 특활비 나눠주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연말 몰아쓰기 반복…11~12월에 지출 쏠림
매년 11월과 12월에 몰아쓰기도 반복됐습니다.
2018년 고양지청의 연간 특활비 지출총액은 5176만 4000원인데, 그 중 11월과 12월 두 달 동안 2300만 2000원이 집행됐습니다. 이는 연간 지출액의 절반 가까운 44.44%입니다. 2019년 11월과 12월은 그해 사용액의 34.33%, 2020년 39.47% 2021년 40.93%, 2022년 29.08%로 나타났습니다.
고양지청이 가린 특활비 집행사유와 수령인의 직함을 모두 복원한 결과 연말마다 100만원 단위의 큰 금액을 여러 명이 동일하게 수령하는 패턴이 반복 확인됐습니다. 2019년 한 해 중 두 번째로 특수활동비를 많이 지출한 날인 12월17일 형사 2·3·4부장검사를 포함해 총 4명에게 '수사정보 교류활동 지원' 명목으로 100만원씩의 특수활동비가 집행됐습니다.
또 2020년 한 해 중 가장 많이 특수활동비를 지출한 12월15일에도 형사 1·2·3부 부장검사를 포함해 총 4명이 150만원씩 특수활동비를 받았습니다. 취재단은 11월과 12월에 특수활동비 지출이 쏠리는 현상이 검찰 주장대로 연말에 기밀 수사가 많이 몰리기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오유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선임간사는 "특활비 지침, 집행 실태 점검 등 특활비를 쉽게 쓰지 못하도록 한 모든 조치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마음대로 지출했다"며 "세금 오남용을 막기 위해 증빙 서류를 공개하고 새로운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2일 오후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열린 '특수활동비 자료 은폐에 대한 법적 대응·고양지청 전수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하승수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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