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증시가 급락하면서 주요 증권사가 주관 중인 유상증자의 실권주가 대량 발생할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잔액인수 계약을 체결한 증권사의 경우 최종 실권을 떠안기 때문인데요. 대규모 실권을 증권사가 안게 될 경우 실권수수료 만큼 유증발행가 보다 낮은 가격에 인수하게 됩니다. 또 해당 물량은 대부분 곧바로 시장에 풀려 대규모 오버행(잠재적 물량부담)으로 이어집니다. 오버행 우려는 주가 약세를 야기해 투자자 손실 위험을 키우는데요. 추가적인 하락이 지속할 경우 과거
엔지켐생명과학(183490)의 사례처럼 증권사가 손실을 입고 실권주를 정리하는 경우도 있어 증권사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유증 3.2조 대기…3.1조는 증권사와 잔액인수 계약 체결
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날 현재 주주배정 또는 일반공모 유상증자 청약을 진행 중이거나 유증 진행을 위해 증권신고서를 공시한 상장기업은 총 21곳(현물출자 제외)으로 유증규모는 3조2170억원에 달합니다. 이중 유증 주관사와 실권주 잔액인수 계약을 체결한 곳은
가온전선(000500),
큐리언트(115180),
베셀(177350) 3곳을 제외한 18곳으로 유증 규모는 3조1416억원 규모입니다.
(표=뉴스토마토)
유상증자의 경우 청약에서 미달한 실권주를 발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요. 유증 주관사와 잔액인수 계약을 체결할 때 발행 예정 신주를 모두 발행할 수 있습니다. 주관사는 실권주에 대한 일정 수수료를 받고 잔여 물량을 모두 받아 가게 됩니다. 발행사는 유증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목표자금을 어느정도 조달할 수 있죠.
유증 규모가 약 2조원으로 가장 규모가 큰 한화오션과 함께 코스모신소재, 원익피앤이 등은 실권수수료가 없는데요. 3곳의 유증 인수수수료만 82억원에 달하는 만큼 증권사 입장에선 발행가 수준에만 주식을 팔아도 남는 장사입니다.
문제는 최근 증시 급락으로 유증 흥행을 장담하기 힘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주주배정 등 공모 유증의 경우 통상 높은 수준의 할인율을 제공하는데요. 유증 진행 시 신주 발행으로 기존주주들의 주식가치가 희석되는 데다, 신주 발행가격이 시가와 같은 경우 투자자로서는 유상증자에 참여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유증 흥행을 위한 일종의 ‘당근책’인 셈이죠.
주가 하락에 줄어든 유증 수요…실권주 발생 우려 ↑
다만 최근 증시가 급락하면서 유증 발행가액을 확정한 기업들의 흥행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지난달 30일 구주주청약 일정에 돌입한
강스템바이오텍(217730)은 이번 유증에서 기준주가(1552원) 대비 25%의 할인율을 제공. 유증 발행가를 1165원으로 확정했는데요. 전일 종가는 1356원으로 발행가 대비 할인율이 14.08% 수준으로 낮아졌습니다.
투자자로선 유증에 참여할 유인이 크게 줄어든 건데요. 유증 참여 전 신주인수권(강스템바이오텍24R)이 90~100원 수준에서 거래됐다는 점을 고려할 경우 20일간 주가가 7.24%만 빠져도 손실을 보게됩니다. 강스템바이오텍의 신주 상장일은 11월20일입니다.
최근 주가가 급락하면서 투자자들의 유증 청약 수요도 줄어든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난 19~20일 주주우선공모 유증을 진행한
EDGC(245620)의 경우 503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계획했지만, 실제 조달금액은 162억원에 불과했는데요. 7400만주의 신주 발행을 계획했으나 유증 청약률은 32.32%에 그쳤고 실제 발행 신주는 2391만7691주에 불과했습니다. EDGC의 유증은 실권주 잔액인수 계약이 없는 모집주선방식으로 실권주(5008만2309주)는 모두 미발행됐습니다. 유증 목표금액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EDGC의 자금운영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해졌죠.
KB 실권주 사태 의식?…최대 20% 수수료에 오버행 우려 확대
증권사들이 실권주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실권주 인수수수료를 받고 있지만, 실권주 발생으로 주가가 급락할 경우 증권사도 손실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지난해
엔지켐생명과학(183490) 유상증자를 주관한 KB증권은 당시 신주(530만주) 물량 71.89%(381만여주)의 실권주를 떠안으면서 최대주주에 올랐는데요. 오버행 우려 등으로 주가가 급락하면서 200억원대 손실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증권사들 역시 최근 진행 중인 유상증자의 실권주 인수의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증권사는 실권주 잔액인수 계약을 체결할 때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10% 내외의 실권주 인수수수료를 받는데요. 실권수수료가 없는 한화오션, 코스모신소재, 원익피앤이를 제외한 상장사 15곳의 평균 실권수수료는 13.2%로 집계됐습니다.
STX(011810)의 경우 실권수수료가 20%에 달했는데요. 대규모 실권주가 발생했던 엔지켐생명과학의 실권수수료는 10%였습니다.
증권가에선 유증 실권주 발행에 따른 변동성 확대를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증권사들이 인수한 실권주는 보호 예수 없이 시장에 언제든 출회 될 수 있는데요. 실권수수료로 인해 유증 투자자들보다 저렴하게 실권주를 인수하는 만큼 주식을 빠르게 처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권수수료가 없는 기업의 유증에서 실권주가 발생할 경우 인수한 증권사들도 빠르게 매도할 가능성이 큽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개인투자자들의 반응이나 실권주 매도에 따른 시장 충격 등을 이유로 증권사의 실권주 처분이 직접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 같다”면서도 “결국에는 장외매매 등을 통해 언제든 시장에 출회 될 물량인데 저렴한 신주 물량은 수급이나 주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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