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민우 기자] '싹콜', '플라톱' 등 은어까지 쓰며 은밀하게 의사·약사에게 뒷돈을 찔러준 종근당 계열사가 당국에 덜미를 잡혔습니다. 해당 업체는 경보제약으로 자사 의약품 처방을 늘리기 위한 리베이트 규모가 총 3억원에 육박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보제약의 부당한 고객유인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3억원을 부과한다고 11일 밝혔습니다. 경보제약은 원료 및 완제 의약품 전문 생산업체로 종근당 그룹의 계열회사입니다.
조사 결과를 보면, 해당 업체는 2015년 8월부터 2020년 7월까지 자사 의약품 채택 및 처방 증대를 목적으로 경기·전북·충북 지역 등에 위치한 13개 병의원 및 약국에 총 150회에 걸쳐 부당한 경제적 이익(리베이트)을 제공했습니다. 해당 업체가 리베이트 명목으로 제공한 금액은 총 2억8000만원에 달했습니다.
경보제약은 판촉비의 일종인 지점운영비를 각 지점에 매월 수표로 내려보냈습니다. 영업사원이 현금으로 교환한 뒤 병의원으로 배달했습니다. 리베이트 지급 여부 및 비율 결정을 위해서는 본사 영업이사 등 임원진이 지점 영업사원으로부터 리베이트 지급 상황을 보고받았습니다.
특히 경보제약은 리베이트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싹콜', '플라톱'와 같은 은어를 사용했습니다. 싹콜은 거래개시 시점 등에 병의원이 자사 약품을 처방해 줄 것을 약속받고 미리 주는 '선지원 리베이트', 플로톱은 처방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후지원 리베이트'의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보제약의 부당한 고객유인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3억원을 부과한다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경보제약 지점장과 본사직원간 은어 사용 관련 대화 내용 발췌. (사진=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는 경보제약의 이 같은 행위가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5조 제1항 제4호(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유인하는 행위)를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보제약은 끝까지 본사 차원의 리베이트 제공 사실을 부인했으나 공정위가 본사와 영업지점, 영업사원 간 녹취록을 입수, 분석한 결과 본사 개입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최장관 공정위 지식산업감시과장은 "소비자가 의약품을 직접 구매할 수 없는 전문의약품 시장 특성상이 있다"며 "의료인의 의약품 선택이 가격, 품질 우수성이 아닌 리베이트에 의해 좌우돼 소비자에게 적합한 상품이 사장에서 선택되지 않는 왜곡된 결과를 낳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은어까지 사용하며 은밀하게 진행된 불법 리베이트를 철저히 조사, 엄중 제재한 데 의의가 있다"며 "보건복지부와 식약처 등 관계기관과 처분 결과를 공유하는 등 의약품 시장에 만연한 리베이트 행위를 근절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이번 사건 조사는 경보제약 내부자 공익신고를 계기로 시작됐습니다. 공익신고자 A 씨는 경보제약이 2013년부터 9년간 총 400억원 규모의 리베이트를 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은 경보제약 본사 및 사무소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보제약의 부당한 고객유인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3억원을 부과한다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경보제약 사옥 전경. (사진=경보제약)
세종=이민우 기자 lmw383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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