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삼성, 현대차 등 지배구조 현안 ‘희비’
최태원, SK실트론 주식 족쇄 풀릴 확률 커져
공정위 “판결문 보고 상고 여부 검토 중”
경제개혁연대, 서울고법에 “사익편취규제 근간 흔들어”
금융위 '자사주 매직' 금지 발표…편법 막는다
친기업 정부 믿던 재계 날벼락…지주전환 선택지 줄 공산
2024-01-31 14:20:39 2024-01-31 16:10:06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대규모 기업집단 지배구조 현안을 두고 희비가 엇갈립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 SK실트론 간접 투자 지분을 두고 사익편취 제동을 걸었던 공정위 행정소송에서 승소했습니다. 상고심이 남았지만 한층 유리해졌습니다. 사건은 사익편취 규제 역사상 처음 ‘회사기회유용’ 법리를 적용했던 사례로 최종 판례가 어떻게 나올지 재계가 주목합니다. 전날 금융위원회는 법률 시행령을 고쳐 ‘자사주 마법’을 금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무회의 심의 과정에서 철회될 수도 있지만 삼성, 현대차 등 비지주회사 집단이 짊어진 현안에서 중요한 선택지가 사라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회사기회유용’ 법리공방 지속
 
31일 관계 당국 및 재계 등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관련 행정소송에서 패소한 공정위가 상고 여부를 검토 중입니다. 이날 공정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판결문에 대해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2022년 3월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SK 및 최태원 회장에게 각 8억원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습니다. 이후 시정명령은 논란이 된 SK실트론 간접 투자 지분을 활용 또는 처분하는 데도 걸림돌이 됐습니다. 처분 경위에 따라 시정명령을 어긴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최태원 회장이 해당 지분을 이용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것이라던 재계 관측도 멈췄습니다. 그랬던 SK그룹이 족쇄를 풀 유리한 고지를 점했습니다.
 
이 사건은 공정거래법 일감몰아주기 사익편취규제상 ‘회사기회유용’ 법리를 첫 적용한 사례입니다. 공정거래법상 사업기회 제공행위와 사실상 동일한 행위를 규제하는 상법상 회사기회 유용금지 규정이 도입된 지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제재했다는 점에서 공정위도 의미를 뒀었습니다. 따라서 법리 효력이 재계 다른 기업집단 유사 사례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퍼졌습니다. 실제 여러 기회유용 사례에 대해 공정위 조사를 요청하는 민원도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재계도 이번 행정소송 결과에 주목합니다.
 
정부의 규제 완화 방침 아래 그간 친족범위 축소, 거래 공시 규정 완화 등 사익편취규제는 약화됐습니다. 이번 고법 판결도 기조에 힘을 실어 줍니다. 고법 재판부는 공정위 처분이 공정거래법에서 정한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행위 요건을 갖추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시정명령과 과징금납부를 모두 취소하도록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경제개혁연대는 재판부 법리해석과 사실관계 확정에 문제가 있다고 논평을 냈습니다. 연대는 “재판부가 간접적이거나 소극적인 방법을 통한 사업기회 제공을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사업기회의 제공 유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며 “만약 재판부 판단대로 법리해석을 한다면 앞으로 공정거래법은 처분권이 있는 사업의 직접적인 제공행위만 금지되는 이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면서 공정위의 대법원 상고를 촉구했습니다.
 
친기업 정부로부터 발등 찍혀
 
전날 금융위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인적분할 시 자사주 신주 배정을 금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내용은 야당에서 발의해 국회 장기 표류해온 법안들과 일치합니다. 그간 재계와 여당이 반대해 국회 문을 넘지 못했지만 정부가 나선 것입니다. 규제 완화를 앞세우던 정부로부터 재계는 발등을 찍힌 셈입니다. 야당 법안들을 내버려 두고 시행령 개정에 나선 것은 표심을 겨냥한 것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일각에선 시행령이 법률보다 약해 심의 과정에서 재계 반대에 부딪혀 누더기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앞서 공정위가 사익편취규제 위반 적발 시 총수를 의무 고발하기로 한 지침 개정도 심의 과정에서 재계 반대로 폐기됐습니다. 이번 금융위 발표에서도 그간 논의 과정에서 대두됐던 자사주 의무 소각 방안은 빠졌습니다.
 
그만큼 자사주 활용 금지 방안은 재계에서 민감합니다. 근래 헤지펀드로부터 지주전환을 요구받은 삼성을 비롯해 현대차, 한화, DB, 태광, 현대그룹 등 비지주 집단에게서 모두 현안으로 잡힙니다. 이들 집단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지주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으며, 혹은 공정거래법상 지주비율에 따라 강제 지주전환될 이슈에도 노출돼 있습니다.
 
삼성은 과거 삼성전자가 지주전환을 포기하고 자사주를 소각해왔지만 삼성생명에 걸린 보험업법 개정안과 최근 헤지펀드가 삼성물산 지주전환을 요구하는 등 지배구조 개편 이슈가 상존합니다. 현대차는 인적분할이 엘리엇 등에게 막혔으나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왔고 지주전환은 그 해법 중 하나입니다. DB그룹의 경우 강제지주 전환을 피하기 위해 자회사 물적분할 및 손자회사 합병 추진 등 편법을 썼다는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자회사의 자산이 커질수록 강제 지주전환될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 상태입니다. 태광그룹은 총 자산 규모가 커지면서 신규 상호출자제한집단에 지정될 시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경우 지배력을 보강할 지주전환이 필요한데 금융사를 팔아야 하는 난관에 직면합니다. 현대그룹은 쉰들러 등 외부주주와 경영권 분쟁 속에 역시 지배력을 방어할 수단으로 지주전환이 지목됩니다.
 
재계 관계자는 “당장 지주전환을 꺼리는 그룹들은 금융계열사를 처분해야 하는 문제 때문”이라며 “정부가 금산분리 완화 방안도 추진하고 있어 지주전환은 먼 미래 선택지 중 하나지만 자사주를 못쓸 경우 비용부담 때문에 아예 시도도 못하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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