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의정 갈등으로 의료공백 상황이 계속되면서 정부가 비상진료 대책들을 속속 내놓고 있습니다. PA(진료보조) 간호사들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고 의료개혁 관련 특례법 등 정책 추진에 속도를 내는 모습입니다. 법적·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상황에서 의료사고나 법적 분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8일 정부와 법조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이날부터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지침’을 내놓고 간호사들도 응급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응급 약물을 투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보완지침에는 10개 분야 98개 진료지원행위 중 수술 집도, 전신마취 등을 제외한 89개 진료행위를 간호사가 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복지부는 또 이날 오전 회의를 열고 의료사고처리특례법과 비급여제도 개선, 지역의사제 도입 등 의료개혁 과제를 논의했습니다. 전날 정부는 “전공의 이탈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민 불안이 커지지 않도록 비상진료 대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등의 제도 마련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각에서는 당장의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사회적 공론화 과정 없이 무리한 의료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현행 의료법은 간호사 업무를 의사들의 진료 보조로 규정하고 있어 의사 업무 일부는 대신하는 PA 간호사들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PA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오가야 했습니다. 정부는 보건의료법에 근거한 시범사업이기 때문에 참여기관 내 행위는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의료사고 시 최종적인 법적 책임은 해당 의료기관장에게 있습니다.
보건의료노조 측은 “설사 의료기관장이 법적 책임을 진다고 해도 현장에서 의사 업무를 수행한 간호사도 소송을 피할 수 없다”며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법적 책임에 대한 불안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의료계 당근책, 환자 부담만 가중”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 대해서도 정책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의료계를 달래기 위한 ‘당근책’으로 내용상 위헌 소지가 많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례법은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하면 의료사고에 대한 공소 제기를 면제해주는 법안입니다. 미용·성형 등 비필수 의료사고도 면제 대상으로 돼 있습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09년 종합보험에 가입한 교통사고 가해자가 중상해를 입혀도 처벌을 면제해주는 건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습니다.
신현호 의료 전문 변호사(법률사무소 해울)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대한 위헌 결정과 마찬가지로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중상해나 사망에 이르러도 공소 제기를 할 수 없다는 건 위헌 소지가 크다”며 “의료인의 형사처벌 면제는 기존 환자피해 구제도 어려웠던 현실에 더해 의사가 돈 내면 면죄부를 주겠다는 정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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