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한적한 들판의 회색 지붕 집. 그 앞에서 빨간 머리 소녀 릴라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민들레 요정에게 소원을 빌고 있습니다. 엄마가 소원을 물으니, 릴라는 수화로 답합니다. "엄마가 나 때문에 힘들지 않게 해달라고요." 엄마는 딸에게 "너는 내 기쁨이고 위안"이라며, 자신이 초록 지붕 집에서 사랑 받고 자란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합니다. "이걸(민들레) 후~ 불면 요정님이 얘길 들려주실거야."
릴라가 불어낸 민들레 씨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 초록 지붕 집 문 앞에 선 앤 셜리(Anne Shirley)에게 도착합니다. 이제 우리는 민들레 요정이 되어, 릴라에게 들려줄 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완성해야 합니다.
빨간머리 앤의 딸 릴라가 민들레씨를 날리고 있다. 이제 게이머는 민들레 요정이 돼 앤의 초록 지붕집 시절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사진=오 마이 앤 실행 화면)
소설의 감동을 게임으로
네오위즈(095660)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 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을 재해석한 모바일 퍼즐 게임 '오 마이 앤'을 20일 한국과 미국에 출시했습니다. 오원식 감독을 포함한 개발자 19명이 약 2년 간 준비한 초록 지붕 집 이야기는, 원작 소설 팬이라면 계속 읽고 싶은 팝업 북 같았습니다.
이 게임의 장르는 '매치3 퍼즐'입니다. 같은 모양 블록을 세 개 이상 맞대면 '팡' 하고 터지는 게임입니다. 한 판을 깨면 민들레 한 송이가 생기는데요. 앤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민들레를 모으려면 퍼즐을 꾸준히 풀어야 하는 구조입니다.
그렇다고 앤의 얼굴을 내걸고 퍼즐만 푸는 게임은 아닙니다. 우선 초록 지붕 집과 그 주변이 펼쳐져 있고, 그 세계에 살아가는 앤과 매슈 아저씨, 마릴라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초록 지붕 집에서 살아갈 날을 그리며 들뜬 앤이 매슈 아저씨에게 말하고 있다. (사진=오 마이 앤 실행 화면)
게임은 이렇게 진행돼요. 처음 초록 지붕 집에 도착한 앤이 설레는 마음으로 집안의 커튼과 소파, 벽지 등을 새단장 합니다. 물론 그만큼의 민들레가 필요하니 퍼즐을 풀어야겠죠. 집을 어느 정도 꾸미고 나면 주요 장면이 진행되는데요. 들뜬 앤이 매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저씨, 이 집에 제 방도 있나요? 오는 길에 생각해 봤는데요, 분명 제 방은 카프리 플라워 패턴의 쉬폰 커튼이 달려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윽고 마릴라가 나타나며 앤의 꿈은 무너지고 맙니다. 고아원에 남자 아이를 보내달라 했는데, 앤은 여자아이였으니까요.
앤은 이름을 묻는 마릴라에게 "코딜리어라고 불러주실래요?"라고 답하는데요. 내일 떠나니까 진짜 이름은 필요 없기 때문이랍니다. 슬픔도 낭만적으로 느끼고 싶어하는 소녀의 마음을 표현한 원작에 충실한 장면이죠.
마릴라 아주머니가 남자 아이를 기다렸다는 말에 좌절한 앤이 슬픔도 낭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실 앤은 코딜리어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사진=오 마이 앤 실행 화면)
소설 팬들은 오 마이 앤에서 보고 싶은 사람이 많을 거예요. 학교에서 단짝 친구 다이애나 배리를 만나고, 인기남이자 숙명의 라이벌인 길버트 블라이드도 만나야 하니까요.
초록 지붕 집이 있는 에이번리 마을도 넓어서 기대감을 높입니다. 앤이 이름 붙인 지명인 '연인의 오솔길'과 '한가한 황야', '유령의 숲', 교회와 학교 등에서 펼쳐질 이야기가 궁금해지는데요. 현재 출시된 게임 기준으로는 앤이 다이애나를 만나는 장면까지 준비돼 있습니다. 물론 이후 이야기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어요.
무대도 계속 확장됩니다. 네오위즈 관계자는 "원작 소설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초록 지붕 집에서의 이야기를 마무리한 뒤 소설에 나오는 다른 장소들도 추가적으로 개방할 예정"이라며 "현재 다이애나 집을 초록 지붕 집 다음 공간으로 제작 중이며, 인기남 길버트를 만나는 스토리도 추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퍼즐을 풀었을 때 앤의 격려도 낭만적이다. (사진=오 마이 앤 실행 화면)
밉지 않은 과금, '소리 버그'는 문제
이 게임은 생동감 있는 앤의 이야기 진행을 위해 퍼즐을 풀어가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퍼즐 풀이 자체가 지루해선 안 됩니다. 제작진은 선택형 퍼즐의 구조를 소설 속 세계관에 맞게 짜내며, 이야기 진행과 퍼즐의 균형을 잡으려 했습니다. 앤은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착안해, 제한 시간 내 꽃을 피워 가상의 왕벌을 퇴치하는 식입니다.
무료로 시작하는 게임인 만큼, 필수에 가까운 과금도 있습니다. 돼지 저금통인 '골든 피기'입니다. 퍼즐을 풀 때마다 게임 내 재화인 골드가 생기는데요. 화면 왼쪽 상단에 표기되는 소액 골드가 있고, 피기에 따로 자동 저축되는 골드도 있습니다.
그리고 피기에 최고 5000골드가 쌓이면, 더 이상 적립이 되지 않습니다. 이때 피기를 사면 그 안에 있는 5000골드가 계정 내 골드로 옮겨집니다.
퍼즐을 풀면 기본 보상보다 많은 골드를 자동 적립하는 골든 피기. 피기에 5000골드까지 차면 더 이상 적립이 안 된다. (사진=오 마이 앤 실행 화면)
처음 한 번은 피기를 그냥 받지만, 이후엔 피기 당 원화 3900원을 내고 사야 합니다. 이걸 사지 않아도 되지만, 퍼즐 실패를 만회하는 데 필요한 골드는 계정에 기본으로 쌓이는 골드만으로 충당하기 버겁습니다.
시즌형 콘텐츠로 파는 배틀 패스도 있습니다. 배틀패스란, 패스를 구매한 게이머가 특정 기간 특정 과제를 달성하면 약속된 보상을 주는 유료 콘텐츠입니다.
앤은 '카멜리아 티파티'라는 행사에 우릴 초대하는데요. 퍼즐 풀이 점수를 쌓으며 약 40일 안에 최종 칸에 도달하면 강아지 등 아이템을 보상으로 줍니다. 보상은 유료 과정인 '로열 티켓'을 구입할 때 훨씬 큽니다. 앤의 의상과 웰시코기 와플 같은 동물 친구 등을 제공하는 식입니다.
시즌제 콘텐츠 '카멜리아 티파티'를 무료 진행하기 위해 광고를 시청하고 나면, 배경과 효과음 등 전체 게임 소리 출력이 멈춘다. (사진=오 마이 앤 실행 화면)
그런데 카멜리아 티파티엔 버그가 있습니다. 무료 진행을 위해 45초에 달하는 광고를 시청하고 나면, 게임 전체 소리가 출력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네오위즈 관계자는 "문제를 인지하고 있고 수정 작업이 예정돼 있다"며 "인게임 진입 후 다시 로비로 나오면 배경음은 다시 정상 출력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틀간 살펴본 '앤'은 온기가 느껴지는 게임으로 다가왔습니다. 자동 진행과 방치형이 주류가 된 시장에서, 소설 속 주인공과 교감하기 위해 퍼즐 풀이를 고민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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