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금융 불모지 태국)①'27년 미운털' 뽑고 교류 넓혀야
아세안 경제 2위 국가, 한국계엔 그림의 떡
"진입장벽은 핑계…단기 성과 집착 탓"
입력 : 2024-03-26 06:00:00 수정 : 2024-03-26 08:00:13
 
태국은 아세안(ASEAN) 2위 경제 강국입니다.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60년이 넘었습니다. 그럼에도 태국에는 번듯한 한국계 은행은 한 곳 없는 현실입니다. 지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태국 정부의 만류에도 국내 은행들이 모두 철수하면서 일종의 '미운털'이 박혔고, 27년간 빗장을 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태국 정부 입장도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는 만큼 국내 금융사들이 진출할 기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뉴스토마토> 특별취재팀은 태국 금융시장의 현재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나라 금융사의 불모지 개척 전략을 진단해 봤습니다.
 
(방콕=이종용·김한결 기자) 국내 금융사를 출입하고 있는 <뉴스토마토> 특별취재팀은 5박6일 일정으로 지난 17일 21시(현지 시) 태국 방콕 수나품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수완나품 공항 출입문을 나오니 34도를 넘나드는 공기가 몸을 덮쳤습니다. 태국의 3·4·5월은 우리나라의 한여름과 비슷한 날씨입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국을 떠나왔다는 사실을 실감케 했습니다. 
 
한국계 금융사 4곳 고군분투
 
분주하게 업무를 시작하는 월요일부터 타국 땅을 밟은 만큼 일정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방콕에 도착한 다음 날인 18일 오전 취재팀은 태국 현지 은행인 카시콘뱅크 본점으로 향했습니다. 카시콘뱅크는 태국 내 자산규모 2위 민간 상업은행인데요. 카시콘뱅크에서는 현지 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태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의 약 45%가 이 은행 계좌를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카시콘뱅크 관계자를 만나 태국의 금융시장 상황과 우리나라 금융사에 대한 평가를 들었습니다.
 
같은 날 오후에는 KDB산업은행 사무소로 향했습니다. 산업은행은 IMF 발생 이후 1998년 태국에서 철수했다가 지난 2013년 사무소 형태로 재개설했는데요. 산은 사무소는 태국 현지에서 영업권이 없는 형태로 '연락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지 금융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조사하고 정보 수집을 하고 있는데요. 태국중앙은행(BOT)을 비롯해 한국상공회의소, 주태국 한국대사관 등 주요 기관과 소통 창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태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자금 공급을 원할히 받을 수 있도록 동남아 지역본부 역할을 하는 싱가포르 법인 등에 금융거래를 주선하기도 합니다.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국민카드 현지법인과 삼성생명 현지법인을 방문했습니다. 국민카드 현지 법인(KB J Capital)은 국민카드가 보유한 동남아 해외법인 3곳 중 한 곳인데요. 2021년 태국 파트너사인 '제이마트(Jaymart) 그룹'과 공동으로 'KB J Capital'을 설립한 이후 지분 50.99%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한 바 있습니다. 이듬해에는 태국 내 유수의 은행을 포함한 다수의 경쟁사를 제치고 삼성전자 제품의 할부금융 독점 파트너사로 선정되면서 영업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삼성생명의 경우 지난 1997년 태국 보험시장 개방기에 현지 파트너 3개사(사하그룹, 시암시티은행, 태국산업은행)와 합작사를 설립했고, 지금은 삼성생명과 사하그룹 2개 주주사 체제로 사업을 생명보험 사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현지 영업이나 회사 운영 등 전반적인 경영을 삼성생명을 맡고 있는데요. 태국 역시 저출산·고령화 영향으로 보험업을 유지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삼성생명이 어떤 영업 모델로 현지인을 공략하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넷째 날에는 국내 금융투자회사 가운데 유일하게 태국에 진출한 다올투자증권을 찾았습니다. 다올투자증권은 2008년 현지 증권사인 파이스트(FAR EAST)를 인수하며 태국 시장에 진출했는데요. 이후 투자은행(IB) 사업에 집중하면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IB 사업을 기반으로 부동산신탁, 자산관리 등으로 사업 영역을 계속 넓히고 있는데요. 태국의 자본시장과 투자 환경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취재팀은 방콕에 위치한 코트라(KOTRA) 태국 무역관도 방문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코트라는 해외시장 개척과 수출입 지원, 외국인 투자 유치 등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과 현지 기업의 무역 거래를 촉진시키는 만큼 태국 경제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데요. '중진국 함정'에서 탈출하기 위해 고전하고 있는 태국 내 상황과 급변하는 정부 정책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엔 방콕의 대중교통과 일반 식당, 전통시장을 이용하면서 금융 시스템이 무엇이 다른지 경험했습니다. 태국은 현금 선호도가 높은 곳으로 인구 밀집도가 높은 도심을 제외하고는 신용카드나 전자 결제가 어려운데요. 중국의 알리페이 사례처럼 QR코드 기반의 전자 결제가 확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모바일 기반 지급수단에 대한 선호가 두각을 보이고 있고 태국 정부가 디지털 정책을 추진하는 만큼 비현금 결제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일본 정부는 태국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했고, 금융사도 대부분 현지 점포를 유지하는 등 태국 시장에 공을 들였다. 사진은 금융사들이 밀집한 씰롬가에 위치한 'Thai-Japanese briede'. 양국의 우정을 상징한다고 한다. (사진=뉴스토마토)
 
일본, 위기를 기회로 활용
 
태국은 아세안 제2의 경제 강국, 아세안 제1의 자동차 제조국이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금융사 입장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데요. 한국 금융사들이 아세안 지역에 보유하고 있는 해외 점포 200여곳 중 태국은 4곳에 불과합니다. 태국 현지에서 지위를 공고히 하는 일본 기업이나 금융사와도 대비됩니다.
 
한국과 달리 일본 정부는 외환위기 당시 태국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했고, 일본 금융사도 대부분 태국 점포를 유지했습니다. 태국의 경제 발전으로 소비 규모가 커지자 일본은 생산기지를 공격적으로 확대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 대부분 1997년부터 1998년까지 발생한 아시아 금융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요. 기축통화국인 일본과 우리나라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무리지만 이후 진출 전략을 비교하면 뼈아픈 것은 사실입니다.
 
태국이 일본과 같은 글로벌 금융사들이 공격적으로 진출해 자리 잡은 포화시장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보다 경제 규모는 크지만 진입 장벽이 높고 경쟁도를 감안하면 자본을 투입한 만큼 단기간 내 수익 실현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태국 현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나라 금융인들은 태국 시장이 불모지가 아니라 블루오션이라고 합니다. 글로벌 협력기구(INFE) 2022년 기준 '금융이해력' 조사에 따르면 태국 국민의 금융이해력은 71점으로 우리나라(67점)보다 높습니다. 저축보다 소비를 선호하거나 미래보다 현재를 선호하는 태도를 나타내주는 '금융태도' 점수(77점)는 조사 대상 39개국 중 가장 높은데요. 막강한 소비력을 기반으로 내수시장이 탄탄하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가 지난 날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해외 진출 때 정부와 기업, 금융사들이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곳에 주재하는 한국 금융인은 "진입 장벽이 높다는 것은 과거 버전의 핑계에 가깝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글로벌 유수의 금융사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IT에 강점이 있는 한국이 노릴 수 있는 시장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습니다. <(2)편에서 계속>
 
태국 주재원들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해외 진출 때 정부와 기업, 금융사들이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못았다. 사진은 태국 방콕에 위치한 태국중앙은행(BOT)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방콕=이종용·김한결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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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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