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MMORPG로 번영하던 한국 게임업계가 성장통을 겪고 있습니다.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해온 게임사들은 정체기를 맞아 플랫폼·장르 다각화에 나섰습니다. 정부도 게임산업 진흥 정책을 냈지만 실효성을 두고 뒷말이 무성합니다. 게임사가 직면한 숙제를 들여다보고 정부 정책의 한계점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와 확률형 아이템이 견인해온 게임사 실적에 공백이 생기면서 장르와 플랫폼 다변화, 파격적인 도전이 시급해졌습니다. 업계 형님 격인 1세대 개발자들이 세운 게임사들은 위기감 속 시장 변화에 맞춰 변신을 꾀하고 있지만, 세대 교체 준비는 물론 방향 전환도 늦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서잔 왼쪽부터 엔씨소프트 김택진, 박병무 공동대표. (사진=엔씨소프트 유튜브)
리니지 천하도 옛말…엔씨, 대규모 권고사직 돌입
13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036570)는 2024년 1분기 영업이익 257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68% 줄어든 수치입니다.
실적 악화에 시달려온 엔씨소프트는 창사 이래 첫 공동 대표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창업자 김택진 대표와 전문 경영인 박병무 대표가 각각 게임과 살림을 도맡았습니다. 김 대표는 새로운 게임 개발 방식을 연구하며 구글 등 해외 기업과 인공지능(AI) 협력 관계도 넓히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경영 내실화를 위한 효율화 작업'과 인수합병(M&A) 등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공동대표 체제 이후 대규모 권고사직이 시작되자 직원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게 노조 측 설명입니다.
박병무 엔씨소프트 공동대표는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고정비성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권고사직을 단행할 것"이라며 "본사 인원을 올해 말까지 4000명대 중반으로 줄어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엔씨소프트 직원은 5023명입니다.
엔씨소프트의 악재는 모바일 게임 성장 둔화와 리니지라이크 MMORPG의 범람, '쓰론 앤 리버티' 초기 성과 부진에 따른 해외판 흥행의 불확실성 등이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한국신용평가는 이 같은 이유로 엔씨소프트 무보증사채 등급전망을 'AA/안정적'에서 'AA/부정적'으로 바꿨습니다.
엔씨소프트 실적을 견인해온 리니지 모바일판의 동력은 점차 떨어졌습니다. 2017년 6월 출시된 '리니지M'은 공시 매출 기준 2000억원대 매출이 연속 1000억원대로 전환되기까지 7개 분기가 걸렸는데요. 2021년 11월 출시된 '리니지W'는 정점을 찍고 3개 분기만에 1000억원대로 떨어졌습니다. 엔씨소프트는 2023년 4분기 실적 발표 때부터 게임별 매출 공개를 비공개로 전환했습니다.
MMORPG에 기대를 걸었던
컴투스홀딩스(063080)도 뒤늦게 방향 전환에 나섰습니다. 컴투스홀딩스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 35억원으로 흑자 전환했습니다. 지난해 연간 영업손실 규모는 140억원이었습니다. 지난해 퀀텀점프를 기대하고 출시한 MMORPG '제노니아'는 10일 기준 구글 매출 순위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이에 설립자 송병준 의장의 장르·플랫폼 다변화 의지가 관심을 끄는데요. 컴투스홀딩스는 PC·콘솔 게임 시장 공략에 나선다고 밝혔습니다. 첫 작품은 던전 탐험형 로그라이트 RPG '가이더스 제로'입니다.
최근 설립자 박관호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위메이드(112040)는 1분기 영업손실 376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나이트크로우', '미르' 시리즈 등 기존 MMORPG 경쟁력 유지와 개발중인 FPS 게임 등 장르 확장 성과가 주목됩니다.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오른쪽)가 지난달 26일 서울 IFC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텔라 블레이드' 출시 후 계획을 밝히고 있다. (사진=SIEK)
"새 시도 안 하면 휩쓸린다"
일부 1세대 개발자가 세운 회사가 고전을 면치 못한 사이, 넥슨과
네오위즈(095660), 시프트업 등은 과감한 콘솔 투자로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세대 원화가 출신 김형태 대표가 세운 시프트업은 지난달 26일 액션 게임 '스텔라 블레이드'를 플레이스테이션(PS)5에 독점 출시한 뒤 판매 상위권을 지키고 있습니다. 네오위즈 'P의 거짓'과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는 각각 100만장과 300만장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습니다. 네오위즈는 'P의 거짓'의 꾸준한 인기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1085% 오른 148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엔씨소프트가 '배틀크러쉬' 등 콘솔 게임 출시를 앞두고 있고 슈팅 게임 'LLL' 개발도 한창이지만, 리니지 동력 저하 시점과 맞물리지 못했다는 게 업계 일각의 평가입니다. 특히 게임 개발에 보통 3~5년이 걸린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작품을 만드는 차세대 스타 개발자 육성과 출시 준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1세대 개발자들이 기존 성공 공식에 갇히다 보니 '파격적인 게임'이 나오지 않게 됐다"며 "지금 나오는 게임들의 게임사 로고를 가리면 어디서 만들었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라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넥슨과 네오위즈처럼 차세대 스타 개발자가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새로운 게임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의 최근 발언도 자못 의미심장합니다. 김 대표는 스텔라 블레이드 출시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시도가 새 플랫폼에서 기술과 함께 자리잡을 때, 다가오는 또 다른 패러다임에 대응할 준비가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휩쓸려버린다"고 짚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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