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유류세 인상 전 주유소의 재고 확보 경쟁 속에 정유사가 스폿물량(현물)을 잠궜습니다. 정유사 역시 재고가 부족하단 이유로 이례적인 공급중단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정유사도 기존 재고를 내달 공급하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주유소는 재고가 없다는 정유사의 입장에 불만과 불신을 보입니다. 더욱이 알뜰주유소는 공급사인 SK에너지가 정기물량 출하도 극도로 제한해 주유소는 물론 석유공사와도 마찰을 겪는 등 대란입니다.
한 주유소의 가격표시판. 기사와 무관. 사진=연합뉴스
28일 업계에 따르면 SK에너지,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정유 4사가 지난 26일부터 일제히 스폿물량 출하를 중단했습니다. 출하중단은 이례적입니다. 가뜩이나 유류세 인상 직전이라 재고경쟁이 치열한데, 스폿출하를 중단해 주유소에선 곡소리가 납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유사 쪽에선 정부가 출하제한을 했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믿기 어렵다”며 “정부는 소비자 눈치를 봐서 유류세를 일부만 올리는 건데 출하제한하면 내달 주유소들이 비싼 재고를 받게 되고 기름값이 오를 텐데 그럴 리 없다”고 반발했습니다. 저가 물량이 시장에 덜 풀리면 소비자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정유사 역시 재고를 확보해 두면 내달 공급에서 마진을 남길 수 있어 "재고가 없다고 속이는 게 아니냐"는 불신마저 퍼졌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도 유류세 인상 가능성이 불확실해 생산을 미리 늘려두기가 애매했을 순 있다”며 “그래서 주유소로부터 주문량이 몰리다보니 재고가 부족했던 게 아니냐”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또다른 관계자는 “유류세 인상이 거듭 밀리다 6월 인상은 거의 예상됐다”며 “생산량을 늘리지 못했다면 수급조절에 실패한 정유사 탓”이라고 따졌습니다. 또다른 관계자는 “주유소는 재고를 팔아 적자를 봐도 며칠 업장 문을 닫았다 다시 열 수 없는 게 아니냐”며 “반대로 정유사는 그렇게 하는 꼴인데 공급사가 과점이라 가능한 것이다. 정유사마다 재고는 차이날 수밖에 없는데 똑같이 재고가 없다는 이유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제히 출하중단은 사실상 담합”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유류세 인상은 내달부터인데 정유사 공급가는 벌써 이달 말 유류세 인상분만큼 오른 것으로도 파악됩니다. 여기엔 6월 내 국제유가가 올라 공급가 인상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 보입니다. 정유사는 브랜드 계약 주유소와 비브랜드 간 구분지어 석유제품을 공급합니다. 이번에 중단한 제품은 비브랜드 제품입니다. 비브랜드 제품은 브랜드 계약품보다 통상 가격할인율이 높은 편입니다. 따라서 주유소는 보다 유리한 조건에 재고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정유사도 재고 소진이나 매출 확대 등 수급조절에 활용합니다. 그런데 정유사는 비브랜드 출하중단과 더불어 브랜드 제품 역시 출하를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석유공사, 알뜰주유소 가격통제
알뜰주유소는 총체적 난국입니다. 알뜰주유소 공급사인 SK에너지가 석유공사에 공급하는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알뜰주유소 관계자는 “SK가 물량을 제대로 안 줘서 석유공사가 산업통상자원부에 요청했고 그러자 SK가 조금 더 주는 걸로 했다”며 “그래도 지금 100이 필요하면 10에서 20정도만 주고 있는 형편”이라고 전했습니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은 관련 내용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습니다.
스폿 출하중단과 더불어 석유공사로부터도 재고를 확보하기 어려운 알뜰주유소는 진퇴양난입니다. 관계자는 “알뜰물량을 제대로 안주면서 스폿물량 쓰라는데 그것도 잠궜다”며 “기름을 어디에서 가져다 쓰란 얘기냐”고 토로했습니다.
재고가 없는 알뜰주유소는 다음달 유류세 및 국제유가 인상분이 더해진 물량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석유공사는 가격을 통제하고 나서 기름을 부었습니다. 최근 알뜰주유소들에게 공문을 보내 다음달 유류세 인상 전후 가격을 제한했습니다. 초과 시 여러 페널티를 부과한다는 방침입니다.
6월30일과 7월1일에는 아예 판매가격을 동결하도록 했습니다. 또 7월2일부터는 이틀마다 조정할 수 있는 인상분을 정해뒀습니다. 조금의 페널티도 적자로 이어지는 주유소는 사실상 강압적 가격통제로 인식합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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