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4대 그룹의 희비가 극명합니다. 삼성과 SK, LG가 법정 싸움과 실적 부진에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만 예외인 모습입니다. 이재용, 최태원, 구광모 회장과 달리 정의선 회장은 사법 리스크가 없어 어깨가 한결 가볍습니다. 부침을 겪는 삼성, SK, LG에 비해 주력 사업도 순조롭게 순항 중입니다.
재판만 5년째 '삼성'…천문학적 이혼 'SK'
13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0년 9월 기소된 이후 재판만 5년째입니다. 주력 사업인 반도체를 비롯해 그룹 실적도 굴곡이 가파릅니다. 초격차 기술 및 혁신을 강조했지만 중국 추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TSMC와의 격차는 벌어졌습니다. 아시아 반도체 공급망 주도권을 TSMC가 가져가는 형국에다, 근래 반도체산업을 이끄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은 SK하이닉스가 선점한 구도입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의문 속에 삼성이 예고했던 초대형 인수합병(M&A)은 장기간 지연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당초 M&A 가능성을 시사했던 재작년 무렵부터 자동차용 칩 공급망 이슈와 반도체 업황 사이클 하락, 생성형 AI 붐 등 시장 환경이 급변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그룹의 총 자본은 400조원을 넘고 그 중 현금성 자산만 100조원 정도 차지합니다. 자본 중에 유무형자산 재투자 지출은 17% 내외 수준입니다. 시설투자비가 큰 반도체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신규 투자처를 못 찾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재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이 변해 후보군의 인수가치가 지금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생성형AI 대응에 경쟁사보다 늦었던 점은 시장 분석에 오점을 드러낸 치명타가 됐다. 유보금을 재투자하지 못하고 쌓아두는 만큼 사업가치를 높일 막대한 기회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삼성 내부에서는 정현호 부회장의 장악력에 대한 우려도 흘러나옵니다.
SK는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 2심에서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재산 분할이 선고되며 충격에 빠졌습니다. 경영권 위협으로까지 비화된 양상입니다. 그룹이 힘을 쏟고 있는 2차전지(SK온) 부문은 여전히 적자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상보다 더딘 2차전지의 성장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벽도 존재하는 실정입니다.
SK온은 이중상장 이슈에도 묶여 까다로워진 당국의 쪼개기 상장 심사와 상법상 이사충실의무 규정 강화 리스크에도 노출됐습니다. 상장을 통한 투자자금 회수가 지연되면서 그룹 전반의 순차입금은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그나마 엔비디아향 SK하이닉스의 수주 실적이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엔비디아가 칩 수급 다변화에 나서고 있고, 엔비디아는 AMD와 인텔 등 전통의 AI칩 강자들에게 독점적 지위를 도전받는 중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SK온은 수율 개선을 통한 수익성 개선 효과가 당초 예상보다 지연됐다”며 “하반기에도 적자 탈출하지 못하면 그룹으로 신용위험이 번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SK 내부에서는 최 회장이 재산 분할액을 마련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대법원이 2심을 뒤집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노 관장은 재산 분할이 확정되면 상당액을 사회에 환원할 의지를 보이는 등 여론전에서도 앞서가는 모습입니다.
상속분쟁에 구조적 불황 'LG'
LG 역시 구광모 회장이 상속분쟁 민사소송에 시달리는 형편입니다. 그룹의 주력인 LG화학은 총체적 난국에 빠졌습니다. 석유화학사업의 범용제품은 중국산의 증설로 구조적 불황에 처했고, 배터리 계열 소재사업도 2차전지 성장이 정체된 위기에 함께 묶였습니다.
2022년 6월 LX그룹이 분리되면서 그룹 전체 사업 역량 또한 분산됐습니다. 이후 디스플레이와 석유화학의 실적 부진으로 그룹 전반의 수익성이 2년 연속 저하된 추세입니다. 그룹 합산 영업이익률이 2021년 8%대에서 지난해 3%대까지 추락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LG는 중국과의 경쟁이 극심한 화학과 배터리 등 사업 포트폴리오가 우려 부분”이라며 “수직계열화된 사업구조로 비용 효율을 극대화했던 사업방식이 한계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경쟁사들에 비해선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체질 개선이 빨랐지만, 뜻밖의 중국 내 경기 부진으로 공급과잉 이슈가 심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송사 없는 '현대차', 유일한 상승세…미래 사업도 척척
반면, 현대차를 이끄는 정의선 회장만 유일하게 진행 중인 송사가 없습니다. 실적 또한 4대 그룹 중 유일한 상승세를 지속 중입니다. 올 들어 전기차 성장 둔화, 테슬라와 중국 완성차 간 가격경쟁 등 시장 환경은 비우호적으로 변했지만 그룹 전반적으로 작년까지 벌어들인 현금이 풍족합니다.
금융계열사의 자산 중 자본만 책정하는 공정자산 순위에서 SK에 재계 순위 2위를 뺏긴 지 2년째지만 실제 재무상태는 현대차그룹이 우위를 보입니다. 보유현금이 차입금보다 많은 순현금 기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의 총자산은 작년 324조원으로 그 중 차입금이 33조원에 불과한데 비해, SK그룹의 총자산은 300조원에 차입금이 118조원이나 됐습니다.
정의선 회장은 전동화 전환 속도를 높이는 한편 그룹의 미래인 수소 및 로봇 신사업에서도 활로를 열고 있습니다. 정 회장의 대표적인 M&A 성과인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로봇 시장의 메가 트렌드를 타고 상장 가치가 어느 정도일지 뜨거운 관심을 모읍니다.
재계 관계자는 “전기차 성장 둔화와 미국 대선 변수 등 불확실한 환경이 커지고 있으나 당분간은 시장 대응에 여유가 있을 정도로 큰 폭의 실적 개선이 주효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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