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정책금융연구소는 11개 주요 정책금융기관에 대해 △시스템 △경영전략과 성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을 평가합니다. 먼저 정책금융기관 간 업무중복 문제를 들여다봤습니다. 업무중복 논란이 있는 8개 기관 가운데 6곳의 소관부처가 모두 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처 간 업무 조율이 부재한 상황에서 기관 간 '밥그릇 싸움'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연구소는 유사 업무 경쟁으로 인해 국민 선택권이 제고되는 것인지, 혈세 낭비로 이어지는 것인지 진단합니다.
[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한국벤처투자(한벤투)와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성장금융)은 국내 벤처투자(VC) 시장의 대표적인 모펀드 운용사입니다. 대규모 펀드를 운영하면서 VC에 대한 자금 중개를 담당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요. 한벤투는 정부 부처 예산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인 반면 성장금융은 민간기업과 은행 등의 자금으로 펀드를 조성하는 '반민반관'의 독특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벤투는 벤처투자법 제66조에 근거해 지난 2005년 모태펀드 운용사로 설립됐습니다. 당시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 주도로 만들어진 한벤투는 모태펀드를 관리·운용하며 국내 창업·벤처기업의 성장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성장금융은 금융위원회 주도로 조성된 성장사다리펀드가 법인화 절차를 거치면서 2016년 설립됐습니다. 성장사다리펀드는 창업·혁신 기업에 자금 공급을 위해 조성된 펀드로, 성장금융은 지난해 말 성장사다리펀드 1호에 이어 2호 펀드 위탁 운용사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성장사다리펀드의 최대출자자는 산업은행입니다.
두 운용사는 펀드를 위한 펀드(Fund of Funds), 모펀드를 운용합니다. 모펀드는 기업에 직접 투자하지 않고 개별 펀드(투자조합)에 출자해 직접적인 투자위험은 낮추면서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펀드를 말합니다. 한벤투와 성장금융은 대규모 모펀드를 조성하고 자금을 배분·출자해 중소·벤처기업 성장을 지원합니다. 각각 모태펀드와 성장사다리펀드를 운용합니다.
중기벤처 자금공급 역할
(그래픽=뉴스토마토)
모펀드 운용사라는 본질은 같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모태펀드를 조성하는 자금 출처는 중소벤처기업부와 문화체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 9개 정부 부처가 출자한 예산입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되는 모펀드인 만큼 정책적인 색깔이 강합니다. 한벤투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자회사로 공공기관에 해당합니다. 정부부처의 경영실적 평가를 받고 국회 국정감사 출선 대상이기도 합니다.
성장금융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005930), 포스코 등 민간 기업의 출자를 받아 모펀드를 만듭니다. 성장금융은 표면적으로는 민간기업으로 공적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출범 당시 최대주주가 성장금융PEF(59.21%)였던 관계로 공공기관운영법상 공공기관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장금융은 겉은 민간기업의 형태이지만 정책자금 성격의 모펀드를 운영하기 때문에 '반민반관'의 독특한 조직입니다.
성장금융이 민간 영역으로 분류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투자 관련 경력이 전무한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 투자운용 본부장으로 내정되는가 하면, 대통령 인수위에서 활동했던 인물이 사외이사로 선임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공공의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는데요. 지난 6월 성장금융사모투자합자회사(59.21%)가 청산되며 성장금융의 최대주주가 한국거래소(19.74%)와 한국예탁결제원(19.74%)으로 변경됐습니다. 거래소가 예탁원의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사실상 거래소가 최대주주인 셈입니다.
기관·펀드 통합 이견 여전
한국벤처투자(위)와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은 모펀드 운용사란 공통점이 있지만 자금 출처, 조직 형태, 출자 규모 등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사진=한국벤처투자,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한벤투와 성장금융의 모펀드 출자 사업은 대동소이합니다. 한벤투의 모태펀드 출자금은 각 계정에 선정된 43개 조합에 분배되는데요. 비상장 창업기업, 기술혁신형·경영혁신형 중소기업, 벤처기업 등에 투자해야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창업 초기 단계의 기업에 자금을 투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성장금융의 경우 출자 사업 중 '은행권 중견기업 밸류업 펀드'가 최대 규모입니다. 블라인드 펀드 1800억과 프로젝트 펀드 700억 등 총 2500억을 조성했습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500억원씩 출자했습니다.
주로 대형 VC는 성장금융에, 중소형 VC들은 한벤투의 모태펀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VC 업계 관계자는 "성장금융이 운용하는 펀드는 조성 단계부터 은행권에서 LP를 받고 들어간다"며 "모태펀드에 비해 사이즈가 커 VC 입장에선 허들이 하나 더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전문적 경력을 쌓은 조합이 성장금융이 운용하는 성장사다리펀드에 진입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한벤투와 성장금융의 주무부처는 각각 중기부와 금융위원회인데요. 중소벤처기업 지원을 위해 두 기관과 모펀드를 통합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여전합니다. 한벤투와 성장금융이 전문화 한 사업 분야가 따로 있다고 하더라도 벤처기업의 성격을 두고 구분히 모호하다는 지적입니다. 반면 출자기관과 출자금 성격이 다양해야 펀드 결성과 벤처기업 지원이 원활할 수 있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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