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민주당이 제3자 추천 방식의 '채상병 특검법'(순직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시했던 방식을 수용해 대여 압박 강도를 높이고, 동시에 여권의 분열을 노린다는 포석입니다. 하지만 한 대표는 "바뀐 게 없다"며 불수용 의사를 밝혔습니다. 야당이 비토권을 가지면서 대법원장 추천 의미가 퇴색됐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한동훈안 절충"…압박 나선 민주
민주당 등 야5당은 3일 4번째 채상병 특검법을 발의했습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1·2차 채상병 특검법은 재표결 끝에 폐기됐는데요. 지난달 발의된 3차 특검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입니다. 민주당은 이번에 발의한 특검과 기존 특검법을 병합심리 해서 이달 안에 처리한다는 방침입니다.
4차 특검법이 기존 법안과 가장 다른 점은 '특검 후보 추천 권한'입니다. 대법원장이 우선 4명을 추천하면, 민주당·비교섭단체가 2명으로 추린 뒤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임명합니다.
만약 대법원장이 추천한 인사가 부적절하다면, 야당은 '재추천'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주장했던 '제3자(대법원장) 특검 추천안'에 야당에 추천 권한이 부여됐던 3번째 특검법을 절충했다는 게 민주당 설명입니다.
특검의 '수사 대상'엔 지난 3차 때와 마찬가지로 김건희 여사 이름이 올랐습니다.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의 '구명 로비' 의혹과 연계해, 범위를 김 여사까지 넓힌 건데요. 구명로비 의혹을 규명하게 되면, 그동안 의문으로만 남았던 '외압 의혹'의 동기를 밝힐 수 있다는 게 중론이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선 포기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다만 여당이 특검 수사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제보 공작' 의혹은 법안에서 제외됐습니다. 수사 대상이 돼야 한다면, 그 내용을 담아 여당이 발의하라는 겁니다.
김용민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법원장·야당 공동 추천 방식으로 특검법을 변경했다"며 "한 대표가 공언한 대법원장 추천 특검을 발의하니, 약속을 이행하라는 취지다.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정치적 결단과 양보"라고 압박했습니다.
아울러 이 특검법에서 파견검사는 20명에서 30명으로, 파견검사를 제외한 파견공무원은 40명 이내에서 60명 이내로, 특검보는 3명에서 4명으로 늘었습니다.
제3자 특검법에도…한동훈 "바뀐 게 없다" 거부 의사
결국 이번 채상병 특검법도 '야당 단독 의결'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이 반복되는 수순입니다. 국민의힘이 재추천요구권을 규정한 특검법을 수용할 가능성이 극히 낮은데요. 이미 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이 요구권을 갖는 법안도 거부 의사를 밝힌 상태입니다.
조지연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형식은 3자 추천이지만, 사실상 야당이 재추천요구권을 갖고 입맛대로 특검을 고르겠다는 '야당 셀프 특검'"이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친한(친한동훈)계 박상수 국민의힘 대변인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것은 제3자 특검법이 아니다"라며 "대법원장이 추천한 4인 전원을 민주당·조국혁신당이 거부할 수 있는 법이다. 이들이 만족할 때까지 대법원장은 갖다 바쳐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문제는 한동훈 대표입니다. 한 대표는 지난 6월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수사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채상병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했는데요. 대표가 된 후엔 1개월 이상 "당내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고 할 뿐 발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 대표는 이날 경북 구미에서 반도체 산업 현장 간담회를 가진 후 기자들과 만나 제3자 추천안을 담은민주당의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제 입장은 그대로"라며 거부 의사를 명확히 했습니다. 이에 따라 4번째 채상병 특검법도 폐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한 대표는 정치 경험·세력이 없기 때문에 '명분'과 '원칙'만 보고 싸우면서 나아가고, 그러면서 세를 모아야 한다"라며 "한 번 승부수를 던졌다면 호흡 조절은 적당히 해야 한다. 너무 길게 하면 끊긴다"고 꼬집었습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여당에 가장 위험한 건 내부 분열인데, 지금은 강도가 아주 센 상태"라며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생각이 다르다 보니, 민주당은 어떤 제안을 던지더라도 여권 분열을 끌어낼 수 있다. 말 그대로 '해피'한 상태"라고 짚었습니다.
최 특임교수는 '국민의힘 이탈표 전망'을 묻는 말에 "한 대표가 세게 밀어붙이면 의외로 이탈표가 나올 수 있고, 재표결에서 통과될 수도 있다"며 "한 대표가 국민 지지를 받는다면, 윤 대통령도 쫓아내긴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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