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훈 선임기자] 5년째 달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1주일에 3~4번 5㎞를 31분 정도에 뜁니다. 더 뛸 수 있어도 5㎞만 달립니다. 30분 달려야 운동 효과가 있다는 말을 30분만 달리는 것으로 이해한 겁니다. 달리기의 좋은 점은 언제든 그만 달릴 수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마라톤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5㎞는 나름 먼 거리다. 처음부터 5㎞를 생각하면 그 거리가 평생처럼 느껴집니다. 이럴 때마다 쓰는 방법은 5㎞를 5분의 1로 끊어서 생각하는 겁니다. 가령 첫발을 내딛을 땐 1㎞를 생각하고, 1㎞가 지난 뒤부터는 ‘조금만 더 뛰면 절반인 2.5㎞’라고 자기 암시를 하는 식입니다. 반환점을 돌 땐 ‘1㎞만 더 뛰면 마지막 1㎞가 남는다’고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자기 착각이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닙니다. 머리는 영악해서 남은 거리와 남은 시간을 수시로 일깨웁니다. 미세먼지가 많아서, 술을 많이 먹어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등 달리지 않을 핑계 또한 차고 넘칩니다. 고관절과 허벅지, 종아리에 통증이 번져오는 날이면, 포기하고 싶은 유혹은 가히 불가항력적입니다. 달릴 때 중력은 더 커지는 것인지, 시간은 더 느리게 흐릅니다. 달리기가 한 번도 쉬운 적 없었다는 마라톤 선수의 말은 사실입니다.
달리기는 단독자인 인간의 삶과 닮았다.(사진=Pexels)
이런 점에서 달리기는 단독자인 인간의 삶과 닮았습니다. 달리기를 하는 양재천에는 홀로 뛰는 러너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땅을 내딛고 땅을 박차는 고됨의 반복을 통해 도시의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넙니다. 무리 지어 달릴 때도 그 거리에 도달하게 하는 것은 결국 각자의 딛음과 박참입니다. 고통을 가로지르는 각자의 뜀박질만이 자신을 다른 곳으로 데려갈 수 있습니다.
앞발이 뒷발이 되고 뒷발이 앞발이 되는 이 걸음이 생의 길일 것인데, 그 단순한 순환이 인간을 나아가게 하는 겁니다. 한 작가의 표현을 훔치자면,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뛸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하를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다리를 움직여 나아가는 일은 복됩니다.
러너는 바람을 몰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사람입니다. 어느 가을날, 맞은편의 내게 목례하던 초로의 러너를 기억합니다. 그 연대와 격려의 인사가 바람에 실려 왔습니다. 사람이 달릴 때 바람도 일어납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순간을 겨우 다스려 5㎞에 도달하면 성취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이어트는 덤이죠. 살이 8㎏ 이상 빠졌습니다. 혈당과 지방간 수치도 정상이 됐구요. 밤잠 설치던 버릇도 없어졌습니다. 내년에는 하프 마라톤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달리기를 하면서 삶이란 하기 싫은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과정임을 어렴풋이 깨닫게 됐습니다.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도 함께요. 20대에 달리기를 몰랐던 것이 후회스런 이유입니다. 꾸역꾸역 밥을 버는 일처럼, 도리 없이 달리는 수밖에 없다고, 달리기는 말해주었습니다. 당신에게 달리기를 권합니다.
오승훈 선임기자 grantorin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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