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뉴스토마토> 사옥에서 열린 'K-국방연구소' 설립 세미나. 왼쪽 부터 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 박선원 민주당 의원, 김윤태 전 한국국방연구원(KIDA) 원장, 박창식 K-국방연구소 소장, 정광섭 뉴스토마토 대표, 김태성 전 육군소장,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부승찬 민주당 의원. (사진=뉴스토마토)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1990년대 초 북핵 1차 위기 당시 북·미 협상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박사는 북한발 핵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고, '북한 핵' 최고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와 북한 분석가로 유명한 로버트 칼린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쟁에 나설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는 견해를 제기했습니다.
남북한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설정한 북한은 핵 무력을 고도화했고, 윤석열정부도 한·미핵협의그룹(NCG)을 통해 미국 핵자산의 한반도 임무 배정을 확약했습니다. 쌍방이 오랜 기간 억제력 경쟁에 몰두하면서 무력시위 양상을 지속한 겁니다.
"김정은 '적대적 두 국가'…체제보장 위한 현실적 계산"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일 <뉴스토마토> 산하 'K-국방연구소'는 현재의 한반도 안보 위기관리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위해 첫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K-국방연구소는 한반도 위기의 본질이 남북한의 과잉 억제가 만들어 낸 '안보 딜레마'라고 짚고 대량응징보복과 같은 응징 전략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발표한 '핵 교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까지 내놨습니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인 김정섭 박사는 '한반도 안보 위기관리,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첫 발제 토론에 나섰습니다. 김 연구위원은 현재의 한반도 상황이 암울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의 전략 의도를 오독한 결과라고 반박했습니다.
'적대적 두 국가'와 '유사시 남조선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라는 발언 등 김 위원장의 표현이 호전적이기는 하지만 '체제보장'을 확고히 하려는 현실적 계산이 깔린 '약자의 자구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동서독 관계에서도 동독은 1974년 통일 조항을 삭제하며 '두 국가론'을 주장했는데, 이는 국력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흡수통일을 두려워한 조치였습니다.
한반도 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건 김 위원장의 '핵 독트린'입니다. 북한의 '핵 교리'에는 핵 무력의 작전적 사명과 핵 선제 사용, 자동 핵 타격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때문에 북한의 핵 교리는 핵보유국 중에서도 공세적이고 급진적 핵 독트린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김 박사는 북한의 핵 교리도 '억제 논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근거로 파키스탄과 냉전시대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들었습니다.
파키스탄은 1998년 핵실험 이후 재래식 분쟁에서도 핵 선제 사용을 불사한다는 이른바 '비대칭 확전 태세'를 채택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인도에 대적할 재래식 전력의 부족에 따른 것으로, 선제 핵 사용 위협을 통한 '억제'를 도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핵 선제 사용' 정책은 냉전 시대 나토의 독트린이기도 했는데요. 이는 소련의 위협에 나토가 재래식 전력 증강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 박사는 "북한이 핵 선제 사용 독트린을 공표했다고 해서, 북한의 전략적 의도가 현상타파라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군사적 안정성은 쌍방 선제공격의 유인이 없는 상태를 지칭한다"며 "공격과 방어 능력 차원의 불균형이 있더라도 실효적 응징보복이 가능하다면 선제 공격이 억제돼 군사적 안정이 유지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70년간 '이론적 틀' 뛰어넘는 '국방정책' 필요"
특히 그는 남북이 필요 이상의 '과잉 억제'에 매달리면서 한반도 안보 딜레마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김 박사는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해 아직도 '억제의 실패'라는 패러다임에 매몰돼 있지만, 지금은 1950년의 남침 상황과는 다르다"며 "한반도 전쟁 위험의 본질은 위기를 통제하지 못하는 '의도하지 않은 확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박사는 한반도 내 평화와 안정성 회복을 위한 방안으로 한국형 3축 체계의 효율적 정비를 제시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상대가 공격하면 곧바로 화력을 퍼부어 응징하는 대량응징보복(KMPR)을 우선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이는 상대로 하여금 1격을 허용하는 개념이 아닌, 강력한 응징보복 전력을 통한 '억제' 전략입니다.
동시에 '즉시, 강력하게, 끝까지 대응한다'(즉·강·끝)라는 '옛날식' 대응이 아닌 미국과 중국의 관계처럼 전력강화와 함께 소통 채널 강화라는 이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해 박창식 K-국방연구소 소장은 "핵 강대국들의 대표적 확전 방지 장치가 군사 핫라인"이라며 "남북도 시급히 군사 핫라인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K-국방연구소 연구위원인 김윤태 전 한국국방연구원(KIDA) 원장은 "북한의 제한적도발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재래식 응징보복능력과 함께 거부적 억제능력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응징능력 기반의 최소 거부 능력은 냉전 시 케네디 정부에 의해 추구된 '유연반응 전략'의 한반도판이라는 게 김 전 원장의 설명입니다.
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K-국방연구소 연구위원)은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에 대응하려면 지난 70년간의 이론적 틀을 뛰어넘는 사고의 전환과 대북 국방 정책·전략의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K-국방연구소 연구위원)는 "한반도 안보딜레마가 나선형 구조로 심화·확산하고 있는데, 이를 진정시키는 역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