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사진=뉴시스)
미국의 에너지 정책과 원자력 연구·개발 및 군 핵무기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추가한 시점이 바이든 전 대통령 퇴임 직전인 지난 '1월 초'로 확인되면서 파문이 더욱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 에너지부 대변인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최근 DOE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에 대한 확인을 요청한 국내·외 언론 질의에 "DOE는 광범위한 'SCL'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이전 정부는 2025년 1월 초 한국을 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국가'(Other Designated Country)에 추가했다"고 답했습니다.
DOE 측은 "목록에 포함됐다고 해서 반드시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는데요. 하지만 양측 간 방문과 협력이 "사전 내부 검토를 거친다"고 밝혀 이전과 다른 제한이 가해진다는 점은 확인했습니다.
민감국가 지정에 따른 제한 조치는 4월15일부터 발효될 예정인데요. 지난해까지 미국 에너지부의 SCL에 포함된 나라는 25개국으로, 북한·이란·쿠바는 '테러지원국' 그룹, 중국·러시아는 '위험국가' 그룹으로 분류돼 있고, 이번에 한국은 이스라엘·대만과 함께 '기타 지정국가'로 분류됐습니다.
SCL 국가 중 '상호방위조약' 동맹국은 한국이 유일
SCL에 일본, 호주, 뉴질랜드 같은 전통적인 미국 우방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은 한 곳도 없으며 특히 미국과 문서상 ‘상호 방위 조약’을 맺은 동맹국은 한국이 유일합니다.(이스라엘도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문서화된 안보 조약은 없음)
외교부는 이 문제로 질타를 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한겨레>가 보도하기 전까지 사실상 두 달 동안 이에 대해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도 직후 외교부는 "관계 부처와 관련 내용을 확인 중"이라고 했으나 그때 이미 DOE 산하 17개 국립연구소 가운데 하나인 '제퍼슨 랩'(토머스 재퍼슨 국립 가속기 연구소)의 '민감국가' 명단에 한국이 포함돼 있는 상태였습니다.
바이든정부가 한국을 SCL에 포함한 정확한 이유와 이 조치에 대한 트럼프정부의 정확한 입장이 무엇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요. 미국이 한국을 SCL에 포함한 것은 핵무장론이 그 원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문재인정부 외교부 1차관 출신인 최종건 연세대 정외과 교수는 지난 1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윤 대통령은 국제 비확산 체제의 초석인 핵확산금지조약(NPT)상 의무에 대한 한국의 오랜 공약 및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했다"는 2023년 4월27일 한·미 '워싱턴 선언'의 한 대목을 상기하면서 "대한민국은 NPT 의무를 잘 지키는 나라이고, 한·미 원자력 협정 또한 잘 준수하고 있는데 왜 이 부분을 콕 집어 한·미 동맹 80주년 문건에 넣어야 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미국은 독자적 핵무장이라는 매우 비뚤어진 욕망을 가진 윤석열정권을 신뢰할 수 없었던 것"이라며 "그래서 워싱턴 선언 속에 확장 억제 공약을 강조했지만, 그 이면에는 NPT와 한·미 원자력 협정을 지키라고 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미국 에너지부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 (그래픽=연합뉴스)
"미국, '독자적 핵무장' 욕망 가진 윤석열정권 불신"
2023년 1월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 보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문제가 심각해져가지고 대한민국에 무슨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그해 4월 한·미 워싱턴 선언에서는 기존의 핵우산을 더욱 강화하는 '핵협의그룹(NCG) 설립'에 합의하는 한편 NPT 의무 준수를 확약해 <조선일보> 등으로부터 '한·미 핵협의그룹 창설, 韓 핵 족쇄는 강화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의 최측근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9월 취임하면서 "핵무장도 모든 가능성 중 하나"라고 했고 여당인 국민의힘의 대선후보급 정치인 대부분이 자체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 등을 주장하자 미국의 우려가 커지면서 SCL에 한국을 추가했다는 것이 최 교수의 분석입니다.
원자력 전문가인 이춘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초빙전문위원도 같은 날 자신의 SNS에 "(미국의 비확산 전문가들에게 문의한 결과) 민감국가 지정은 정보기관에서 상당한 정보 판단을 한 후에 하는 것이고 주요 동맹국 중에서 지정된 이스라엘과 한국은 모두 핵이 원인인 것 같다는 전언"이라며 "핵문제에서 미국이 동맹국이라고 봐준다는 말을 들은 바가 없다. 이스라엘이 왜 지정이 되었나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반면 미국의 이번 조치는 핵무장론 때문이 아니라 '12·3 비상계엄' 때문이라는 반박도 있습니다 학계의 대표적 핵무장론자인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15일 SNS에 "DOE 홈페이지에 따르면 민감국가는 정책적 이유로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국가로 국가안보,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경제안보 위협, 테러 지원을 이유로 특정 국가를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면서 "2024년 12월과 2025년 1월에는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조치와 그 후폭풍으로 인해 국내에서 자체 핵무장론 논의는 아예 실종되었던 시기이므로 정치권에서의 자체 핵무장론 확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말에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에 추가했다는 주장은 당시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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