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비대면 회의 시대, 오디오 품질이 사회적 판단에 영향
예일대 연구진, 메시지의 내용과 무관하게 음색과 음질이 판단에 미치는 영향 실험으로 입증
2025-03-27 09:43:19 2025-03-27 14:34:03
비대면 화상회의 장면. (사진=Unsplash/public domain)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심리학 용어 중에 초두효과(Primacy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받은 인상은 이후에 나타나는 정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후속 정보가 첫인상과 모순되더라도 잘 바뀌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취업 인터뷰에서 면접관은 몇 분 안에 채용 여부를 마음속으로 결정하기도 합니다. 소개팅이나 비즈니스 네트워킹에서도 첫인상은 신뢰도나 호감도에 큰 영향을 줍니다. 이런 효과는 코비드-19 이후 보편화된 디지털 화상회의, 온라인 인터뷰, 데이팅 앱 등 비대면 상황에서도 나타납니다. 화면에 나타난 외모, 배경, 목소리는 상대방의 판단에 영향을 미칩니다.
 
구직자들의 경우, 화상 면접을 준비할 때 화면으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면접관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외모를 단정히 하고 배경도 정돈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목소리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의 귀에는 목소리가 부드럽고 풍부하게 들리지만, 상대방에게는 금속성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예일대학교 우차이연구소(Wu Tsai Institute) 심리학 교수 브라이언 숄(Brian Scholl)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줌(Zoom)으로 진행된 어느 교수회의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회의에서 한 동료 교수는 자택 녹음실에서 고급 마이크를 사용해 목소리가 매우 풍부하고 깊이있게 들렸던 반면, 또 다른 동료는 오래된 노트북을 사용해 목소리가 얇은 금속성으로 들렸습니다.
 
비대면 회의에서 목소리 좋으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져
 
그 순간 숄 교수는, 더 좋은 음질로 말하던 동료의 주장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고, 음질이 나쁜 마이크를 사용한 동료의 말은 덜 인상적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흥미롭게도 그가 평소에 의견을 나눌 때 더 공감했던 동료는 오히려 후자였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오디오 품질이 듣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이 연구 아이디어로 이어졌습니다.
 
숄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은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뉘었습니다. 한 그룹은 고급 마이크로 녹음된 듯한 또렷하고 생동감 있는 음성을 들었고, 다른 그룹은 동일한 메시지를 값싼 마이크에서 흔히 들리는 금속성의 가는 소리로 들었습니다. 전달된 단어와 문장 내용은 항상 동일했고, 참가자들에게는 매 실험마다 자신이 들은 문장과 단어를 받아 적게 해,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했는지 확인한 결과 마이크를 통한 음성의 변조가 이해가능성(comprehensibility)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실험마다 음색의 성별(남성과 여성)과 억양을 다양하게 구성했습니다. 어떤 실험에서는 컴퓨터 합성 음성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 경우에는 발화자의 성대나 마이크 선택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텍스트를 컴퓨터로 변환한 합성음성(synthetic voice)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구직 가능성에 대한 실험에서는 남성 인간 화자의 목소리로 전형적인 자기소개를 들려주고 같은 내용을 컴퓨터 합성 음성으로 반복해서 들려주었습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이성에 대한 호감도를 테스트하기 위해 여성 인간 화자의 목소리로 데이팅 앱에서 상대방 프로필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목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신뢰성에 초점을 맞춘 실험에서는 컴퓨터로 합성된 여성의 목소리로 교통사고에 대해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녹음을 실험 참가자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화상회의용 고성능 마이크로폰. (사진=Unsplash/public domain)
 
오디오의 품질이 비의도적인 편향과 차별의 잠재적 원인
 
이런 실험에서 실험 참가 청취자들은 더 풍부하고 울림 있는 녹음에 대해 유의미한 정도로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음질이 더 좋은 녹음을 들은 참가자들은 그 화자를 더 고용할 만하고, 매력적이며, 지능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했습니다. 반대로 음질이 좋지 않으면 청자는 화자의 지능, 신뢰성, 고용 가능성, 심지어는 이성적 매력까지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결과는 음질이 화자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음성으로 전해지는 메시지에 대한 판단은 메시지 자체의 내용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그 메시지가 전달되는 ‘표면적인 수단(superficial vehicle)’, 즉 소리 자체에 의해서도 편향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효과는 마이크 품질이 사회·경제적 지위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을 감안할 때, 의도치 않은 편향과 차별의 잠재적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고급 오디오 장비를 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화상 면접이나 회의, 온라인 네트워킹에서 부당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숄 교수는 “우리가 수행한 모든 실험에서, 전달된 메시지와는 무관하게 저품질 마이크를 사용한 금속성의 가는 소리가 화자에 대한 인상을 부정적으로 만든다는 결과가 나타났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비대면 상황에서 음질은 단지 소리를 명확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인식에 깊은 영향을 줍니다. 비대면 면접이나 발표, 회의에 참가할 때는 괜찮은 마이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3월 24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됐습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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