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미국 정부가 쇄빙선 분야 파트너로 핀란드를 선택하면서 국내 조선업계가 아쉬움을 삼켰습니다. 다만 이번 수주전은 기술력 자체에서 밀렸다기보다는 지정학적 요인과 현지 조선소의 건조 역량 부족, 법·제도적 제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북극항로가 전략적 자산으로 부상하며 관련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 조선업계는 추가적인 북극항로 대응 선박 기술 개발과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한화오션이 극지연구소에 제안해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차세대 쇄빙연구선 조감도. (사진=한화오션)
6일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최근 미 해양경비대는 북극 안보쇄빙선(ASC) 건조 계약을 핀란드 라우마마린컨스트럭션(RMC)과 체결했습니다. RMC는 2028년까지 2척을 건조해 인도하고, 나머지 4척은 기술을 이전받은 미 현지 조선소인 볼링거 조선소가 2029년까지 건조하는 방식입니다. 계약 규모는 총 32억7000만달러(약 4조7284억원)입니다. 미 해안경비대는 “핀란드의 쇄빙선 전문성을 즉시 활용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건조 역량을 미국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업계에서는 기술력 자체의 열세보다는 지정학적 요인과 현지 조선소의 쇄빙선 건조 역량, 법·제도적 제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핀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으로 미국과 안보·방위 분야에서 긴밀히 연계돼 있습니다. 또한 미국 내 항구를 운항하는 선박은 미국에서 건조돼야 한다는 존스법(Jones Act)에 따라 쇄빙선 역시 현지 조선소에서 건조해야 하는데, 국내 조선사 보유한 현지 조선소는 아직 쇄빙선 건조에 필요한 설계·생산 역량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황입니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원천 기술이 핀란드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기술력에서는 절대 밀리지 않는다”라며 “이번 수주전 결과는 구조적인 요인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국내 조선업계는 극지 운항 선박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 개발과 사업 준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과거 캐나다서 19만톤급 쇄빙상선 선형 성능 검증 시험을 완료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북극항로 운항에 필수적인 고기동성과 친환경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차세대 전기 추진기(POD)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삼성중공업이 러시아 해운사로부터 수주한 쇄빙유조선. (사진=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은 2008년부터 극지용 선박 개발을 시작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21척의 Arc7급 쇄빙 LNG 운반선을 건조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7월 정부 주도의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 사업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2029년까지 PC3 등급 연구선 건조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삼성중공업 역시 러시아의 야말(Yamal)·Arctic LNG2 프로젝트를 통해 쇄빙 LNG 운반선과 쇄빙 셔틀 탱커 설계·생산 경험을 쌓았습니다. 제재 등으로 일부 사업이 취소됐지만 기술적 기반은 남아 있다고 평가됩니다.
업계에서는 향후 시장 성장에 맞춰 대응 전략을 한층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북극항로 이슈가 본격화되면서 관련 발주가 늘어날 가능성이 큰 데다, 쇄빙선은 일반 선박 대비 약 30% 높은 고부가가치 선박”이라며 “극지 운항 수요 확대 등 대외 환경 변화를 예의 주시하며 관련 기술 개발과 사업 역량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번 수주전은 기술력보다는 구조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만큼, 이에 대응한 별도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쇄빙선과 같은 특수선은 일반 상선과 달리 국가 간 안보 협력과 경제 협력이 우선되는 분야”라며 “기업 차원의 접근보다는 정부 차원에서의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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