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태현 기자]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연루된 문재인정부 인사들이 최근 1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받은 가운데, 윤석열정부 출범 직후 해양경찰의 수사 결과가 공식 발표되기도 전에 국방부에선 이미 '결론 번복'을 전제로 문건을 작성했던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전임 정부 인사들을 겨냥해 벌인 '표적 수사'의 실체가 다시 한번 확인된 셈입니다.
9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해경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수사 결과를 본청에 보고하기 일주일 전인 2022년 5월30일 작성된 국방부 보고서에는 수사 결과를 뒤집는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은폐 시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지난해 12월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사진=뉴시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 12월26일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 했습니다. 700페이지가 넘는 판결문에는 당시 수사 결과가 번복되는 과정 등이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이란,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인 고 이대준씨가 서해에서 피격·사망한 일입니다. 고인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0년 9월22일 서해 소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됐습니다. 37시간 정도 해상에서 표류하다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지만, 북한군에 의해 사살됐으며 시신은 소각됐습니다.
문재인정부였던 2020년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해경은 "이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정부 출범(2022년 5월10일) 이후엔 결론이 뒤집혔습니다. 2022년 6월16일 해경은 국방부와 함께 "이씨에 대해선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입장을 번복한 겁니다.
문제는 해경이 입장을 번복한 시점이 사건 발생 2년이나 지난 시기였고, 그간 해경에선 별다른 수사 진척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당시 해경은 사건의 핵심 단서가 될 미국 측의 공조수사 결과를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수사기관의 독립적인 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정부 부처인 국방부가 이미 '번복 발표'라는 각본을 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의혹이 짙어지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1심 판결문에는 해경이 미국 측의 이메일을 받은 시점과 수사 결과가 뒤집힌 과정이 구체적으로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천해경이 공조수사와 관련해 미국 측의 이메일을 받은 날짜는 2022년 5월27일입니다. 당시 미국 측은 이메일에 "추가로 필요한 자료가 더 있느냐"고 묻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해경은 이 메일에 별다른 답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한 달 뒤인 6월16일 브리핑을 통해 "미국과의 공조수사 자료가 5월27일 도착했다"라며 "살해 피의자인 북한 군인이 특정되지 않고 소환도 불가능해 수사를 종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해경은 미국 측 메일을 받은 뒤 2022년 6월2~3일 수사심의위원회를 열었고, 3일에는 인천지검에 수사 중지 의견을 문의했습니다. 이어 7일엔 해경 본청 수사국장에게 수사 결과 보고서를 제출했으며, 9일엔 수사를 최종 마무리한 뒤 이튿날 유족에게 결과를 통지하고 사건 기록을 검찰에 넘겼습니다.
즉 해경이 5월27일부터 6월9일까지 수사 종결 절차를 밟는 동안, 국방부는 5월30일에 이미 '수사 번복'을 전제로 한 보고서를 작성하며 사실상 해경의 결론을 앞서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방부가 국가안보실과 논의, 해경의 결론과 무관하게 수사 결과 번복 발표를 준비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해경이 미국 측의 공조수사 결과 이메일을 받기 전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이메일을 먼저 수령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윤석열씨의 최측근인 김태효 전 안보실 1차장이 개입했다는 증언도 판결문에 기재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국방부의 '서해 사건 관련 안보실 협의 결과 문건'을 보면, 안보실은 2022년 6월10일 김 전 차장 주관으로 해경과 국방부 실무자들을 불러 기존의 판단을 뒤집는 결정을 하자고 모의했다는 겁니다.
문건 등에 따르면, 해경이 6월13일 안보실에 자료를 보고하면 '김 전 차장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라는 대목이 명시되기도 했습니다. 6월16일 수사 결과 발표, 감사원 감사, 국정원 고발, 검찰 수사가 윤석열씨 승인 하에 진행됐다고 추정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런 '가이드라인'에 맞춰 감사원은 즉각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했습니다. 국정원 역시 2022년 7월,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이 '서해 사건 관련 첩보 보고서'를 무단 삭제했다는 이유로 고발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2022년 7월 김규현 당시 국정원장이 윤씨에게 '박 전 국정원장 등을 수사 의뢰하겠다'고 보고하자, 윤씨는 "국정원이 직접 고발하라"고 지시한 걸로 드러났습니다.
김태현 기자 taehyun1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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